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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7 22:48
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 (21) 북한에서 수령에게 충성을 맹세
 글쓴이 : admin
조회 : 3,153  
북한에서 수령에게 충성을 맹세
심주일목사의 탈북일기 (21)



일주일이 일년으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한 일주일 조사를 받고 나오면 즉시 원서를 받아가지고 신학대학으로 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일주일은 1년이 되었다. 내가 조사기관에 제일 먼저 한 부탁이 "저는 신앙인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좋으니 주일에 교회에 출석시켜 주십시오"였다. 그분들이 내게 답변해준 것 역시 "당연합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이 안에서도 주일 성수를 하니 걱정할 필요없습니다"였다. 그래서 나는 조사기관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제주극동방송을 듣던 습관으로 첫날부터 제주극동방송을 청취하려고 했더니 전파 송신 특성상 서울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평양과 중국에서 그렇게 잘 들리던 방송이 더 가까이 그것도 제 나라 제 땅에 왔는데 안 들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고 제주극동방송은 늘 사모하던 방송이었기 때문에 제주극동방송에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를 극동방송에 보내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내 몸이 서울에 있다고 해도 아직 합법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자유로운 몸이 아닌데 편지가 오고간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밖에 나올 수도 없는데 어떻게 편지를 우체통에 넣을지 걱정이었다. 생각다 못해 모험을 하기로 했다.

주일이면 나와 함께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기 위해서 밖에서 검증받은 신앙인들이 들어와야 했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편지를 부탁하려고 했었다. 계획한 대로 일은 진행되었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어떤 곳인가. 편지는 제주극동방송으로 간 것이 아니라 정보기관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편지를 부탁했던 그분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그 대가를 감당했다. 나는 당장 호출을 받아 질책을 받았지만, 그 편지의 내용이 그저 단순 신앙에 대한 내용이어서 후에 정보기관에서 편지를 그대로 제주극동방송으로 보내주었다.

그 편지 결과 나는 대한민국의 신분증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 즉, 합법적 국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제주극동방송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것도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탈북자 신분이고 제한된 곳에서 응당히 해야할 일만을 해야 하는 내가 아무리 국내선이라고 해도 비행기까지 탈 수 있겠는가. 책임 있는 일꾼들을 동행시키고 또 경호를 받으면서 제주도에 갔다. 참으로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뭔데 이런 배려까지 받는 것인가를 생각하자 이것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해당 기관에서도 이 사람 즉, 심주일은 해야 할 일을 끝내면 반드시 신학을 해야 할 사람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의 어떤 교회에 연결시켜 신학대학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영락교회에 나를 연결시켜 주었다. 한번은 주일에 영락교회에서 온 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은근히 나는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평양에서나 중국에서 제주극동방송을 통해 목사님들의 설교 중 영락교회 목사님의 설교도 많이 들었기에 방송을 통해서 만나본 그 목사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영락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에 그 목사님을 직접 만나보았다. "목사님의 설교를 평양에서 들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말했더니 그 목사님은 깜짝 놀랐다. 방송을 듣고 구원받은 한 영혼이 목사님 앞에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방송을 통해 설교하는 분들이 많다. 눈에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그 방송을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책임감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세례가 급하다

그날 나는 영락교회 제2여전도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어머니와 누나 같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오늘까지도 그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영락교회는 장로교 통합측 교단이다. 교단의 헌법에 따라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려면 세례받은 지 5년 이상 된 사람들만이 교단 직용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급한 것이 세례였다. 이 문제는 영락교회에서도 제기한 문제이지만 더욱 급하게 여기는 곳은 내가 당시 일하고 있는 국가기관이었다.

그때부터 한쪽으로는 국가에서 제출한 문제들을 놓고 일을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세례받을 준비도 하였다. 마침내 1999년 2월 24일 000목사님의 집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교인이 되었고 정식으로 영락교회 성도가 되었다. 세례를 받고 나니 영락교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꾸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고 그 대신 영락교회 제 2여전도회 회원님들이 자주 나를 찾아와 주었다. 올 때마다 속옷을 비롯한 티셔츠, 간식 등 많은 것을 사다주었고 또 기도해주곤 하였다.

그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체험한 것만으로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명을 저에게 주시려고 평양에서, 아니 제 유년시절 아니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를 구별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제 2여전도회를 위해서 제 힘껏 모든 것을 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종으로, 제 2여전도회 앞에는 평신도로, 그리고 의리로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기도는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것은 좋지만, 내가 충성하겠다고 해서 충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께서 내가 충성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힘과 영을 주어야만 하는 것인데 그저 내가 충성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북한에서 수령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하던 방법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셨고 세밀하게, 차근차근 나를 인도해 주셨다. (계속)

(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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