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자 : 63 (회원 0)  전체순위 출근기록  오늘 99 어제 159 최대 1,215 전체 1,654,543  
클릭하시면 MAIN PAGE로 이동합니다.
설교/상담찬양AG자료기독교교육도서실세미나선교/교회결혼/가정미디어씨니어코너성경대학열린마당
AGKDCED > 선교/교회 > 북한 > 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 (14) 모든 일의 배후에
  AGKDCED LOGIN
  
  
  ID저장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개척교회
교회홍보실
레크리에이션
선교
교계소식
성지순례
기독교변증
간증
교회성장
교회 탐방
역사의 교회
한국교회 순교/유적지
신학과 교회
북한
HOME  >  선교/교회  >  북한 
 
작성일 : 12-09-07 22:38
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 (14) 모든 일의 배후에
 글쓴이 : admin
조회 : 4,006  
모든 일의 배후에
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14)



내가 하룻밤 잠을 자게 된 그 집은 아버지와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다. 그 집 어머니는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밤새 그 집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고 처음으로 중국 텔레비전을 보았다. 신기할 줄 알았는데 말일 통하지 않으니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 집 아버지는 조선 땅에서 아침 7시와 정오 12시에 싸-이렌 소리가 들리는데 왜 싸-이렌을 울리냐고 물어보았다. 조선 땅이라면 분명 이것은 자강도 만포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 물음에 적당히 답변을 하다가 순간 '아, 여기서 만포가 멀지 않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동안 행군을 한 것 같았는데,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집은 농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에서의 농사형편을  밤새 물어보았다. 그는 비료 값이 비싸다고 했고 돈이 생기면 두 아들이 도시에 나가서 다 쓴다며 한탄했다. 그도 북한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우리는 밤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어 피곤하였던 터라 정말로 단잠을 잤다. 이것이 중국에서의 두 번째 밤이었다. 통화로 가야 한다고 집주인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으나 대한민국으로 꼭 가야 한다는 것과 내가 북한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북한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 등은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제일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늦게 일어나 시원하게 찬물에 세수도 하고 깨끗이 면도도 하였다. 아침밥을 잘 차려주어서 힘껏 먹었다. 물론 작전 가방에는 아직도 빵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빵은 아끼고 무엇이든 생길 때 힘껏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밥을 먹고 천천히 길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처음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하루는 옥수수 짚으로 만든 집에서, 하루는 마음씨 좋은 조선족 동포의 집에서 자고나니 '오늘밤도 가다가 저물면 하나님이 귀인을 보내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조급하게 통화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집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야 했다. 전날 밤 집주인이 이야기한 대로 조금 더 행군해 가니 정말로 산이 높았다. 밑에서 높은 산을 올려다보니 하늘과 산이 서로 닿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높은 고지의 정점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압록강 근처에도, 그리고 집안의 도시에도 없던 눈이 지금 내가 가는 길에는 산처럼 쌓여 있다. 그 산골 도로로 화물차들과 승용차, 버스들이 다녔다. 그들에게 내 모습이 참으로 처량해 보였을 텐데도 누구하나 차를 태워주지 않는다. 나 또한 자존심이 있어 직접 차를 태워달라고 애원하거나 구걸하지 않았다.

높은 산꼭대기로 치달아 오른 도로를 따라 그 고개를 넘고 나니 통화시까지 다 온 것 같았다. 3월 22일 이라 계곡에는 맑은 물들이 봄을 노래하듯 흘렀다. 천천히 행군하며 그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참 피로도 풀고 그러면서 빵도 먹었다. 얼마쯤 행군을 하는데 산골이라 해가 벌써 서산마루에 걸렸다.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을도 안보이고 어둠은 사정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옥수수 짚으로 집을 짓고 하룻밤 잘 때에도 이렇게 걱정이 되고 조급하지는 않았다. 둘째밤 조선족 동포의 집에서 하룻밤 지낼 때에도 그렇게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화물차, 승용차, 버스들은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휙휙 빠르게 지나간다. 어떻게 할지 정황판단을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였다.

이것이 웬일인가. 승용차가 지나가다가 내 옆에 와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중국 공안이 추격을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체포하기 위해 차를 옆에 세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안을 보니 운전기사 혼자 타고 있었다. 혼자라면 중국공안이라고 해도 자신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고 공안은 죽음까지는 각오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승용차를 내려다보는데 운전기사가 뭐라고 중국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의 인상을 보니 나를 체포할 공안은 우선 아니라는 것이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데 나 또한 중국말로 대답할 줄 몰랐다. 하나님은 바로 이럴 때 역사하시는 것이다. 순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지혜는 바로 이것 이었다. "지금 가고 있는 통화는 중국말로도 통화이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통화라는 말만 계속했다. 운전기사는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운전기사 옆 자리에 올라 앉았다. 작전 가방은 무릎위에 올려 놓고는 두 손으로 안았다. 작전 가방에 작전 문건은 없었지만 빵이 있었기 때문이다.

승용차는 달리기 시작하였다. 운전기사와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서로 대화가 안 됐다. 단 한마디 그 운전기사의 말 중에 '친지'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분명 이것은 중국에 친척을 찾아오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중국말로도 친척을 친지라고 부르지만 친지라는 소리가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나는 일단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한참 가는데 그가 "찐일쎈, 찐일쎈"이라고 했다. 이것을 생각해보니 김일성이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태연하게 "아, 김일성"이라고 하니 그 운전기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기도 김일성을 안다는 것이다.

곧 밤이 찾아왔다.  얼마간 달리다가 그리 높지 않은 고개를 올라 내리막길로 접어들 때, 눈 앞에 한 도시가 펼쳐졌다. 그때 운전기사가 그 도시를 향해 손을 가리키며 저 도시가 바로 통화라고 했다. 불야성을 이룬 도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지만 '이제는 다 왔다'는 심정으로 기뻤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음식점의 조선족 아줌마

미끄러지듯 경사진 고개를 서서히 내려온 승용차는 통화 시내에 들어섰다. 통화 시내에는 시내 중심으로 강이 하나 흐른다. 강의 이름을 혼강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모르겠다. 승용차는 그 강을 건너가기 직전에 멈추어 섰고 그 운전기사는 나에게 자기는 다 왔다고 말했다. 이제는 내려야 하는데 운전기사에게 차를 태워준 것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이 없었다. 나에게는 북한 돈 20원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운전기사에게 손으로 돈을 세는 훙내를 내면서 줄 것이 없다고 손을 가로 저었다. 보통 그렇게 차를 태워주었으면 중국인 운전기사들이 왜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북한에서 온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며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운전기사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 운전기사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환히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승용차에서 내리기는 했지만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통화 시내에 들어왔다고 해서 먹을 것이 있고 집도 있고 잠자리도 있고 또 나를 반겨 맞아줄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승용차에서 내리니 다리가 좀 뻐근하였다. 어쨌든 행군 속도를 조절하여 행군을 했지만 그래도 먼 거리를 행군했기 때문에 다리에 피로가 무섭게 찾아왔다. 그래도 몇 발자국을 걸으니 또 걸을 만 했다. 통화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강을 건너가려고 다리에 들어섰다. 다리에 들어서기 전, 초소가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마음이 조금 긴장되었다. 하도 북한에서 초소를 많이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넘어서자마자 밥 생각이 간절했다. 집안시에서 한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조선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돈 20원이 아직 있지 않은가. 그때는 북한 돈과 중국 돈의 가치도 모르면서 북한 돈 20원이면 밥 한 그릇은 사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방 음식점 간판들을 돌아보았지만 한국말로 된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두세번 돌다가 한국말 간판은 아니지만 한문으로 된 간판에 다른 글자는 다 모르겠는데 '조선'이라는 두글자만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무작정 그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서서 써빙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인사를 하면서 "어서 오세요"하는 것 같았는데,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음식점 간판에 '조선'이라는 글자가 있었으니 한국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다. 압록강을 건너 청하 마을 보일러 건물에 들어갈 때와 같이 무슨 정신인지 모르고 담대하게 들어갔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고 했던 나의 모든 행동이 돌이켜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나는 아가씨에게 "조선에서 왔는데 밥 한 그릇을 사먹으려고 합니다. 북한 돈 20원은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가씨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아가씨는 음식점 안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이번에는 한 아줌마를 데리고 나왔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집안시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조선족 음식점 영업을 하는 집에서 준 옷을 입었는데도 그 아줌마는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아줌마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나를 음식점 밖으로 밀어냈다. 나도 순간 성격이 살아나 왜 그러느냐, 내가 공짜로 밥을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비록 북한 돈이지만 돈으로 사먹겠다느데 이렇게 내 쫓는 법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항의를 하였다. 아줌마는 밖으로 나와서야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밖으로 쫓아내서 죄송합니다. 보니까 조선에서 온 것 같은데, 지금 음식점 안에서 식사하는 분들이 누군지 압니까?"

나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아주머니는 "지금 저 안에서 수십명이 와서 식사하느데 그들은 바로 통화시 공안국 사람들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아줌마로부터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음식점에서 식사는커녕 통화시 공안국 사람들에게 잡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 아줌마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륵 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줌마는 나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조금 따라갔더니 길 옆 포장마차 같은 가게에서 빵을 사주었다. 원래 음식점에서 잘 대접해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빵을 사준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줌마가 정말 고마왔다.

계속해서 아줌마는 또 따라오라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다시 물어 보았다. 빵을 사주었으니 더 갈 데가 없을 것이고, 아줌마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의심이 들어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줌마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도움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따라가다보니 철문이 있는데 문은 안으로 닫혀 있었다. 아줌마는 "여기가 교회니까 도움 받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돌아갔다.  그 이후 그 아줌마를 만나지 못했다.

모든 일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

어떻게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일까. 우연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나는 북한 종합대학에서 공부할 때 철학과목에서 쌍 범주를 배웠다. 그 쌍 범주에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것이 있다. 북한 사전에서 우연이란 '아무런 원인이나 까닭없이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한편 원인과 결과라는 쌍 범주를 배울 때에는 '모든 사물의 변화 발전은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며 그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내가 산에서 말도 서로 통할 수 없는 중국 사람으로부터 갈 길을 인도 받은 것도, 집안시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조선족 음식점에서 밥을 잘 얻어먹은 것도, 캄캄하여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서 있을 때 평생 한국말을 하지 않던 조선족 아줌마가 한국말을 하며 나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준 일도, 또 이렇게 통화시 공안국에 잡힐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교회까지 안내해 준 아줌마도, 이 외에 청하 마을에서 보일러공들의 환대 등 이국땅에서의 이 모든 일이 그저 원인도, 까닭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노릇이다.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 있었기에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논리나 인간들의 이성과 인간들이 만든 철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어디에 가서 그 원인을 찾아 분석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세상을 벗어나면 신을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잘 못하면 헛된 신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 바로 하나님이 모든 원인이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고,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인간의 철학과 이성으로서는 그 원인을 발견하지도, 또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인간의 이성과 학문과 특히 철학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하나님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못할 때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임을 인정하고 이 세상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하여 이해를 못하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무지이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이 더 그렇다. 나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누가 잘 깨우쳐 주기만 하면 영적인 세계를 빨리 알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공산주의는 일부 하나님의 것을 도용해서 만들고 제도화 한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 같고 정당한 것 같으면서도 모순이 있는데 하나님을 알면 그 모순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부터는 이 세상에 모든 원인과 결과는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만든 철학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가령 바람이 강하게 분다. 그러면 바다에는 물결이 높아지게 되어 있고 지상에는 먼지도 나고 또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바람이 강하게 불었으니 물결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손실을 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즉 어찌 할 수 없이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람보다 앞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우둔한 우리 인간인 것이다.

(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 )

 
   
 

광고    배너등록    회원가입    로그인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총회주소: 605 Broad Ave, #205, Ridgefield, NJ 07657 전화 (201)941-1050 팩스 (201)941-1840 / Copyright (c) 2005-2019 by agkdced.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