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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6-18 16:35
구원 간증문
 글쓴이 : admin
조회 : 5,07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김동환
구원 간증문

나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은 사업에 실패하셨고, 어머님은 가톨릭 성당에서 영적인 피난처를 찾으셨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성당에 다니면서 자랐다. 성당에서 종교적인 예식을 배웠고, 성경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배웠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에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 라는 기도문을 좋아해서, 반복해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러나 한 말씀도 듣지 못한 나는 점점 가톨릭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에 던져진 나는 술과 담배에 탐닉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술과 담배에 빠져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불교의 참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불교의 참선을 통해서 내 스스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성당의 종교적 예식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고, 불교의 지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길을 잃어 버린 양이었다.

바로 그 때에 엄건숙 자매를 만났다. 1986년 4월 달이었다. 엄건숙 자매는 봉천동 모임에서 구원받은 자매였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혼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봉천동 모임에 나가서 복음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복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엄건숙 자매는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봉천동 모임의 형제들도 우리의 결혼에 반대하였다. 마치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담한 심정에 휩싸여,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기도했다. 그리고서 말라기 말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말라기 1장 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도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전에는 관념으로만 죄인이었지만, 이 말씀을 읽고 나서는 내 자신이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죄인이었으며,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은 죄인이었다. 대학교 시절에 내 육신의 아버지와 한번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나는 너 같은 아버지를 둔 적이 없어”라고 크게 소리 지르고 집에서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이 말을 두고두고 후회하였다. 아무리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해서는 안될 말 이었다. 말라기 말씀을 읽을 때, 아버지에게 했던 잘못이 마음 속에 떠올랐고, 갑자기 하나님을 한번도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육신의 아버지에게는 평생 단 한번 아버지임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는 태어나서 한번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었던 것이다.

비록 죄인임을 깨달았지만, 아직 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구원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엄건숙 자매와의 결혼을 주장하였다. 결국 우리는 1992년 결혼하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 모임에 나가기를 싫어했다. 성당이나 교파 교회로 나가자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막상 성당과 교파 교회에 나가 보니,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피에 관한 말씀을 듣기 어려웠으며, 심지어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적을 부인하기 까지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멀리 북부 모임으로 나가곤 하였다. 이 때 개포동 집에서 가까운 곳에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영동모임이었다.

1995년 어느 수요일이었다. 미리 전화를 걸고 안내를 받아 영동모임에 찾아 갔다. 한 자매님이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자매님의 안내로 어느 건물의 지하에 있는 모임으로 내려갔다. 이미 한 형제님이 단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 형제님의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 형제님은 고등학교 시절의  화학 선생님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형제님이 처음부터 우리 반의 화학 선생님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 경제 수석 비서관을 하시던 분의 아들이 우리 반이었는데, 그 친구가 교장 선생님에게 요청하여 화학 선생님이 중간에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발길을 이곳 영동모임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십오 년 전부터 예비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다.

본격적으로 모임에 다니기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다. 모임의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은 늘 기쁜 것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기쁨이 없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나도 그런 기쁨이 있어야 할 텐데… 왜 나에게는 그런 기쁨이 없을까? 내가 정말로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1996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더 큰 슬픔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버지의 암이 재발하여서 병원에 다시 입원하셨기 때문이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해 드릴 수 없었다. 나는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 때 북부 모임의 박준형 형제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형제님이 물어보셨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나는 힘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형제님은 “무엇이 변화되었습니까?” 라고 질문하셨다. 마음에 평화가 생긴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나의 대답은 사실이 아니었다. 내 마음 깊숙이 있었던 소망이 입술로 나온 것뿐 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소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1996년 4월 어느 날 저녁이었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문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담한 마음이었다.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나도 아버지처럼 병에 걸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처럼 나도 죽을 것이다. 나의 삶에서 아무런 기쁨도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성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였다. 베드로 전서를 읽을 때였다.  갑자기 내 영혼을 밝게 비추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절망에 빠진 내 영혼을 위로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베드로 전서 1장 8-9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기쁜 일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 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이에 관한 지식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내 머리 속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철저하게 이 진리에 대해서 장님이었고, 귀머거리였?것이다.  이제야 복음의 빛을 향한 눈이 열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렸다. 이제서야 나는 ‘영혼의 구원’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구원해 주신 그 복음이 왜 그토록 큰 기쁨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큰 기쁨에 감사하면서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께 무릎 꿇을 수 있었으며,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그 해 여름에 침례를 받았다. 오랜 기간 나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하던 아내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기쁨에 넘쳐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았지만, 오래된 육신의 습관을 버리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동안 중독된 담배를 끊고자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입술로 모임에서 찬송을 선택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교제할 수는 없었다. 담배를 끊으려고 온갖 애를 써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나의 의지는 담배를 끊을 만큼 강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님께 서원을 드림으로써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먼 훗날 담배를 끊게 되면, 모임에서 찬송도 선택하고 말씀 교제도 하겠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나를 치시고 인도하셨다. 2000년 여름 이었다. 그 해 여름 캠프에는 인근 모임에서 많은 구도자들이 참석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복음을 전할 형제님들이 그 해 여름 캠프에 참석하지 못했다. 마땅히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었다. 그 때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성령님의 한탄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할 입술이 없단 말인가!” 그 음성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가서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말씀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와서 깨달았다.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 내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던 변명을 내 스스로 깨뜨린 것이다. 담배를 끊고 나서 말씀 교제를 하기로 했는데, 담배에 찌들어 있는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것이었다. 담배의 노예가 되어 담배의 감옥에 갇힌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때에 사도행전 12장 7절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담배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점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었다.

사도행전 12장 7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운 내 모습이 결국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시고 쇠사슬을 벗기우신 하나님의 질책이자 사랑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담배를 끊게 되었다.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였으며,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셨다. 담배의 오랜 중독에서 벗어난 후에 받은 말씀이 요한일서 4장 10절의 말씀이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베드로 전서 1장 8절에서 본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신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말씀을 읽고 찬송가 405장을 부르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내 영혼으로 대면하는 것 같았다. 마치 뜨거운 연탄불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내 온 몸과 내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 크신 사랑, 그 일방적인 사랑에 직접 부딪히면서 내 영혼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가슴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보혈을 감사하고 찬송할 수 밖에 없었다.

2005년 여름, 안식년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미국의 우스터 시로 건너 갔다.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정착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한국인 교파 교회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우스터 모임의 형제 자매들과 축복받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지 않은 길이 없다는 점을 온 몸으로 느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는 말씀이 내 입술에 맴돌곤 하였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dhkimwith@yahoo.com
http://dhkim.net/

( http://dhkim.net/technote/read.cgi?board=christ&y_number=72 에서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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