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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13 21:53
땅콩 박사 조지 워싱턴 카아버의 이야기
 글쓴이 : admin
조회 : 3,246  
"땅콩 박사"란 흑인 식물학자 조지 워싱턴 카아버의 별명이다. 미 남부 지역의 주산물인 목화를 연작하니 땅은 메말라지고, 생산량을 줄어드는데 설상가상으로 멕시코에서 들어온 바구미가 목화밭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카아버는 농민들에게 목화 대신 땅콩을 심기를 권장하였고, 땅콩을 심다 보니 많은 땅콩을 주체하기 힘들에 되었다. 카아버는 땅콩 처리 문제 해결위한 연구 끝에 105가지의 땅콩 요리법을 만들었고, 잉크, 물감, 구두약 등 수많은 생활필수품도 발명 하였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땅콩 박사’라 부르게 되었다.
  카아버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가 누구인지, 정확한 생년월일도 모르는 노예의 후손이다. 그가 식물학자가 되어 동족은 물론, 미 남부의 농민에게 살 길을 열어준 뒤에는, 흑, 백을 초월하여 고아인 카아버를 돌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모세스 카아버 가정의 노예였던 어머니는 어린 카아버를 남겨둔 채 불량배에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모세스는 고아가 된 카아버를 14세 까지 자식과 같이 돌보며 기초적인 글까지 가르쳐 주었는데, 카아버는 더 배우기 위해 14세 때 모세스 집에서 나와 흑인 학교가 있는 네오쇼로 갔다. 네오쇼에 이른 카아버는 마구간 짚 속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에 볕을 쪼이고 앉아 있을 때, 이를 본 마리아 왓킨스 란 흑인이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자기 가정 일을 도우며 학교에 다니기를 허락하였다. 2년 후 카아버는 더 배울 것이 없자 다시 새로운 등지를 찾자 떠날 때에 마리아는 낡은 가죽 성경을 카아버 손에 들려주며 신앙생활을 잘할 것을 권하였다. 카아버가 다음 간 곳은 포드 스코트로 그 곳에서는 세탁업을 하는 흑인 루시 밑에서 일을 도우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루시 가정도 신앙심이 깊은 가정으로 카아버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루는 카아버가 루시에게 좋은 가정을 만난 것은 운이 좋았노라 하자 루시는"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라고 깨우쳐 주어, 카아버는 이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 후에도 백인 미술 교사 버드 여사가 아이노아 농과대학 교수로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카아버를 소개하므로 그 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카아버가 알라바마 터스키기 흑인 학교 교사로 있을 때 에디슨 연구소에서 연봉 10만 불로 초청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에서 수입하던 물감 끊어지자 시민이 물감으로 고통 받자 식물의 열매, 줄기, 뿌리 등으로 500여 가지의 식물성 물감을 만들어 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물감 회사가 카아버 박사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금액을 기록하지 않은 수표를 보내면서 자기 회사에서 일하기를 원하였을 때도 거절하며 물감 만드는 법을 아무 조건 없이 거저 알려 주었다. 카아버는 고아인 자기를 돌본 사회에 대하여 보답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봉사하였으며, 이 귀한 일꾼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고아를 돌봄으로서 후일 흑인 사회는 물론, 남부의 백인 농부들에게도 살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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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버 박사가 흑인 교육가 부커 T 워싱턴이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에서 흑인들을 위한 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던 때, 카아버는 흑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도움을 청해오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사회에서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카아버는 1920년 9월13일 몽고메리에서 땅콩 경작자와 땅콩제품 경영자 회의에서 그를 초청하였다. 카아버는 연구한 것을 가지고 다음날 몽고메리에 도착하여 회의 장소인 호텔로 갔었다. 시민전쟁으로 흑인들이 해방 된지 30여 년이 되었다고 하나 노예의 인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흑인이 백인의 수도에서 물을 마셨다가 들키면 그의 치아(齒牙)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흑인에게는 Mr.니 Mrs.란 칭호로 부를 수 없었고, 백인과 어깨를 같이하고 걷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한 발 뒤떨어져 걸어야만 했다. 그런 때에 늙은 흑인이 허름한 옷을 입고 다 떨어진 가방을 들고 회의장인 호텔에 들어가려고 하니 호텔 직원이 가만히 있을 이가 없다. “이봐 검둥이 어딜 들어가려고?” 흑인은 호텔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아버는 호텔 밖으로 쫓겨나 한 동안 땀을 흘리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호텔 직원에게 사정하기를“나는 카아버 라는 사람이요. 오늘 땅콩 생산 업자들이 나를 초청하여 왔으니 연락을 부탁하오”하였다. 카아버를 멸시하는 눈으로 보며 호텔직원이 회의장으로 올라갔다가 오더니 하는 말 “이곳 승강기는 백인들만이 타는 것이니 저쪽 짐 나르는 승강기로 올라가오”한다. 카아버는 짐 나르는 허름한 승강기를 타고 회의장에 이르니 이번에는 점심시간이니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카아버는 그들이 희희낙락하며 점심이 끝난 오후 2시까지 점심도 굶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이런 천대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참은 것을 후일에 이렇게 술회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심은 개인의 감정이나 터뜨리려고 보내신 것이 아님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심은 그 부유한 실업가들이나 농장 주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메마른 밭을 경작하느라고 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서 보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카아버는 어디서나 인종 문제나 인권 문제에 대하여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고, 백인을 욕하지도 않았고, 저주하지도 않았다. “만일 내게 잘못한 사람들과 일일이 맞서서 따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지쳐버려서 다른 일에는 손도 댈 수 없을 것이다.” 카아버의 이러한 태도를 일부에서는 비겁한 자라고 비난도 하였으나 카아버는 자기 동족을 낮은데서 부터 끄려 올리는 일에 묵묵히 일하였다.



  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아직도 미국 안에서 흑인의 90%가 한국인의 80%가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카아버가 남긴 말 “그들의 강퍅함은 그들이 되 받을 것이요” 주님이 주신 말씀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카아버는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 이였다.

( http://dkpc.org/?document_srl=7815&mid=pastor_column_LIG 에서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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