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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기회로 - 삼성을 일군 거대한 신화 / 김윤영 지음 (2009)  
  글쓴이 : admin   날짜 : 09-10-10 19:32   조회 : 2755    


저자: 김윤영
출판사: 칭찬메아리


책 소개:

‘사업보국ㆍ인재제일ㆍ합리추구’
평생의 신념으로 두고 실천한 이병철의 경영이념!

『위기를 기회로』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호암 이병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6ㆍ25전쟁에서부터 4ㆍ19혁명, 12ㆍ12사태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고난과 역경의 시간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공한 기업을 일구어낸 이병철의 뛰어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 경영이란 근본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국가의 경계마저 뛰어넘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경영 이념과 원칙을 그의 일생과 경영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비 공장을 나라에 바치게 되는 일화처럼, ‘사업보국’이라는 평생의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 등을 자세히 그려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을 일구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이로써 위기란 결코 피할 것이 아니라 기업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유능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모으고 키워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결정 된다’고 말했듯, ‘인재 제일’의 철학을 실천한 모습도 소개한다.

☞ 이 책의 독서 포인트!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다’처럼, 감탄을 자아내는 이병철 회장의 어록이 담겨 있다. 또한 그의 경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다.


차례:

contents

추천의 글
이 땅에 제2, 제3의 호암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들어가는 말
호암 이병철, 그 거대한 이름과 만나다

제1장 위기는 곧 기회다

누가 삼성을 죽이려 하는가
사카린밀수사건, 그 음모의 이름
한비 건설의 꿈이 시작되다
현실로 다가오는 비료공장
세금을 빼돌려 돈을 모았다고?
모든 재산을 나라에 바치겠다
불씨 처럼 되살아나는 꿈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역사적인 한비 공장 기공식
다 지은 후에 바치시오
위기는 곧 기회다

제2장 사업보국이 내 길이다

조센징, 어서 꺼져라!
남다른 호기심이 키운 도전정신
졸업장 하나 없이 끝낸 학교 공부
정미소사업을 시작하다
지나친 욕심은 실패를 부른다
자본금 3만 원으로 시작한 삼성상회
사업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하자
정직하고 믿음직한 사람들
이제 제조업을 일으켜라
돈을 버는 것은 둘째 문제다
나는 한국인의 능력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네가 이병철 아들이냐?

제3장 반도체, 새로운 신화 창조

세계 초일류기업을 향한 발걸음
한 평이라도 더 크게 지어라
이를 악물고 기술을 익혀라
나에게 절망이란 없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위험한 도전
75세에 반도체 신화를 일구다
기업은 곧 사람이다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여전히 살아 있는 거대한 신화


호암 이병철 회장 연보


책 속으로:

1965년 12월 10일. 마침내 울산공업단지 안에서 역사적인 한비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어 30여 대의 불도저가 경례하듯 일제히 삽날을 펼치며 우렁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호암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10년 동안 호암의 가슴에 담겨 있던 꿈이 활짝 날개를 펴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상처투성이의 꿈이었다. 호암은 그 많은 상처가 이제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pp.79~80

호암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다. 호암은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마다 항상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 뚫고 나갔다. 사업보국, 즉 ‘기업 경영을 통해 부와 이익을 창출해서 나라에 보답한다.’는 평생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p.95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업이다. 사업으로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면 된다. 나라가 안정을 찾으려면 경제가 좋아져야 하고, 그래야 국민들도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호암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사업보국이었다. 호암은 시노모세키로 가는 배 안에서 일본 경찰에게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을 풍족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 싹튼 신념이 마음속에서 뛰쳐나와 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형상화된 것이었다.
---pp. 139~140

기업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내보낸다거나 잠시라도 문을 닫아 실업자를 만들어내면 이는 사회적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기업가란 어떻게 해서든 기업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이윤을 챙기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pp.160~161

호암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거친 땅에 공장이 들어서고, 그 공장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하고,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이 트럭에 가득 실려 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호암은 식지 않는 의욕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나라 경제 발전을 이끄는 힘이 되고 주춧돌이 되는 것이 기업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p.165

마침내 1972년 11월 20일, 호암의 집요하고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했다. 2년여의 공사 끝에 삼성전자 단지가 완공되면서 삼성이 만들었다고 분명히 밝힌 텔레비전이 미국에 수출되어 ‘엉클 샘(Uncle sam)’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렸던 것이다. ---p.204

호암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 때는 기존의 사업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경영진 대부분은 위험 요소가 많은 새로운 사업에 반대했지만 호암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굳게 믿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이는 호암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밝은 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p.205~206


출판사 서평: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작

내년인 2010년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이 땅에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호암은 1910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 그해 8월 22일, 일제는 한일병합조약에 따라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다.
호암의 험난한 삶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호암은 끊임없이 앞을 가로막는 고난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를 새로 써나갔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업가들이야말로 새로운 일자리와 부(富), 그리고 기회를 창조해 내는 오늘날의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기업을 경영해 온 호암. 그는 한국 경제계를 이끌었던 ‘영웅’이다.
『위기를 기회로』는 기업 영웅 호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혼을 되살리고, 정신과 역사(役事)를 널리 알리고자 발간한 책이다.

위기의 시대에 더 빛나는 21세기형 리더십

40대에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돈병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재벌로 알려진 호암 이병철 회장을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1970년대만 해도 그 이름은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돈’을 붙인다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호암은 단순히 돈만 아는 장사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암은 사유 재산은 신성한 위탁물이라 믿고 평생 모았던 재산을 바쳐 삼성문화재단을 만들고, 아끼던 소장품들을 기꺼이 전 국민을 위해 내놓았다. ‘기업 경영이란 기본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국가의 경계마저 뛰어넘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바로 호암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 쿠데타, 12·12사태에 이르기까지 격동과 갈등의 역사를 온몸으로 헤쳐 나온 호암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했다. 호암은 결코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에서 희망을 찾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거대한 신화

오늘날 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게 된 것도 호암의 의지와 노력 덕분이다. 그는 반도체를 미래의 사업으로 정하면서 생의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웠다. 반도체를 외국에서 수입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산업의 예속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호암의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과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결단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호암은 그 어떤 역경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삼분폭리사건으로 얻어맞아도, 부정축재자라는 오명을 두 번씩이나 뒤집어써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호암은 자식 같은 기업체를 몇 개씩 팔아 한국비료 공장을 지었고, 다 지은 후에는 나라에 바쳤다. 그 일로 삼성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 되었지만 호암은 훌훌 털어버렸다.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호암은 평생의 신념인 ‘사업보국’을 실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긍지를 느꼈다. 사업보국이란 ‘기업 경영을 통해 부와 이익을 창출해서 나라에 보답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호암이 자기 자신에게 한 목숨과도 같은 약속이기도 하다.
호암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22년이 지났다. 비록 지금은 우리들 곁에 없지만 그가 한국 경제에 남긴 발자취는 여전히 굵고 깊다. 호암은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남다른 식견과 강한 의지로 한국 경제와 산업을 든든한 바탕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호암,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신화다. 거대한 신화다.

동방의 거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리더십은!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만난 거인 - 워싱턴포스트지 캐더린 그레이엄 명예회장
호암 선생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이면서도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호암 선생은 사유재산은 신성한 위탁물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신념대로 평생 모았던 재산을 헌납하여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었고, 귀중하게 아끼던 소장품들도 기꺼이 전 국민을 위해 내놓았다. 일류 사업가다운, 거물다운 자세이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호암 선생의 정신만큼은 세계를 아우르고도 남지 않았나 싶다.

호암을 생각하며 -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호암은 사업이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다. 호암의 사업관은 인재제일주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흔히 삼성사관학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성은 우리나라 기업사에 하나의 기업문화를 일구어내었다.
그러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만 열정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호암은 자기 스스로를 단련시켜왔던 분이다. 일단 시작된 사업에 대해서 제일주의를 견지하던 모습은 무한경쟁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 다시 한 번 변화, 발전시켜야 할 만한 것이다.

진취적 의욕에 불탔던 낮은 목소리 - 제너럴일렉트릭사 잭 웰치 회장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도 합작 문제로 서울에서 호암 선생을 만났는데, 호암 선생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낮은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안색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호암 선생 역시 자신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해왔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가의 자세가 아닌가.

황금의 조상(彫像) -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정말 호암 선생은 어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은 한국 문화의 거대한 조상들을 만들어 세우셨다. 구리와 돌로 만든 그런 조각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천년만년 가는 한국의 문화를 온 국민의 마음에 심는 일대 역사(役事)를 감행하신 것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약탈되었거나 팔려나간 국보급 문화재를 되찾아오셨다. 그렇게 해서 마치 ‘주라기 공원’을 만드는 일처럼 한국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 탱화들을 되살려 이 땅에서 다시 숨 쉬게 하신 것이다.

탁월한 미의식이 빚어낸 향기로운 삶 - 고 신용호 교보생명 회장
호암은 만만찮은 미의식(美意識)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가락을 들을 줄 알았고, 몹시 아꼈습니다.
호암은 가야금 병창으로 듣는 홍보가 중의 몇 대목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빠져 있다가 구성진 가락이 꺾어지는 순간이면
그만 무릎을 탁 치며, “하, 참 절묘하네 그려.” 하고는 소리는 이미 저만치
흘러가고 있는데 그 한 대목에 붙들려 한동안 자기만의 흥취에 잠겨 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어쩌면 우리 국악사에 미친 호암의 영향도 그가 일으킨 사업의 성과
못지않을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admin님에 의해 2011-01-19 16:46:11 화제의 도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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