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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02 16:01
평양 대부흥: 배경 (15) 한국선교의 거점, 광혜원 설립
 글쓴이 : admin
조회 : 3,597  

고종황제


[배경] 한국선교의 거점, 광혜원 설립


갑신정변은 확실히 당시의 “불확실한 환경을 통해서 서양과학과 개신교의 문호를 여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것은 이 지극히 정치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선교의 문호를 여는 데 결정적인 전기가 된 광혜원이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갑신정변 때 뜻하지 않은 화재로 왕궁으로 가기 위해 우정국 밖으로 먼저 뛰쳐나갔던 명성황후의 조카이자 수구파의 지도자인 민영익(閔泳翊)은 개화파의 자객의 칼에 일곱 군데나 찔려 혈관이 끊기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


마침 한국 정부 세관 고문으로 와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P. G. Von Möllendorf)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민영익을 식당으로 급히 옮겨 응급조치하고 한 시간 후 다시 세관본부로 사용하는 자신의 집으로 옮기고 알렌 의사를 황급히 불렀다. 알렌 선교사가 도착하자 14명이나 되는 한의들이 민영익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으나 칼에 맞아 찢어진 상처와 끊어진 혈관은 동양의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알렌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중상자는 이미 출혈이 심하고, 계속 피를 흘리고 있어서 빈사 상태였다. ……오른쪽 귀측 두개골(頭蓋骨) 동맥에서 오른쪽 눈두덩까지 칼자국이 나 있었고, 목 옆쪽 경정맥도 세로로 상처가 나 있었지만 경정맥이 잘리거나 호흡기관이 절단된 것은 아니었다. 상처는 등 뒤로 나 있었는데, 척추와 어깨뼈 사이로 근육 표피가 잘리며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알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극진히 치료해 주었다. 알렌은 민영익의 깊은 상처를 “명주실로 꿰매고” 약을 발라 외상을 치료했다. 후에 알렌은 그의 회고록 한국의 풍물(Things Korean)에서“상당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석 달이나 치료해 주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비록 노련한 의사는 아니었지만 알렌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고, 민영익의 외상은 놀라운 속도로 치유되었다. 1885년 1월 27일 민영익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알렌에게 현금 10만 냥을 제공하고 고종의 재가를 얻어 정2품에 해당하는 참판(嘉善大夫) 벼슬까지 하사했다. 후에 민영익이 알렌의 은혜에 감사해 우리 백성들은 당신을 위대한 의사라고 생각하며 “당신이 미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와 함께, 알렌이 고백한 대로 민영익의 회복은 이 은둔의 나라 지도자들에게 서양의학과 외과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 http://www.1907revival.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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