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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12 12:02
[韓·日 강제병합 100년: 조선의 운명 가른 '다섯 조약' 현장] [4]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글쓴이 : admin
조회 : 3,351  

(1) ▲ 네덜란드 정치 1번지로 꼽히는 헤이그 비넨호프 광장의‘기사의 집’. 1907년 한국의 밀사들이 입장을 거부당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곳이다. /헤이그〓김기철 기자
(2) ▲ 이위종이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 ‘국제 서클’이 있던 건물. /헤이그〓김기철 기자


고종 밀사 3명(이상설·이준·이위종) 쫓아냈던
'기사의 집(당시 회의장·The Hall of Knights)'…
이제 6유로 (약 9300원)내면 맘껏 관광
믿었던 러시아 초청 거부…
"을사늑약은 효력 없다" 회의장 앞 울분의 연설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등 지금은 한국인들 맹활약
和 "G20 초청해달라" 로비도…

네덜란드 의회와 정부 사무실이 모여 있는 헤이그 도심 비넨호프(Binnenhof)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기사의 집(The Hall of Knights)' 탑의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동차가 한가롭게 손님을 맞았다. 관광객과 행인들이 벤치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었다. 1907년 6월 26일 지구 반대편 대한제국에서 온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 밀사 3명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보다 훨씬 분주했을 것이다.

1907년 6월 15일 오후 3시, 45개국 대표 239명이 참석한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가 '기사의 집'에서 막을 올렸다. 헤이그시(市) 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은 이날 비넨호프 광장에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각국 대표단이 마차를 타고 잇달아 회의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막 열흘 뒤인 6월 25일 헤이그역(Hague HS)에 도착한 이상설 등은 회의장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1905년 9월 이범진 주러시아 대한제국 공사가 만국평화회의 주최국인 러시아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정작 회의 직전에는 일본의 보호국이란 이유로 공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905년 을사늑약은 무효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 상태로 몰아넣고 독립을 존중한다고 한다."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던 스무살 청년 이위종은 닫힌 회의장 앞에서 연설한 뒤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입장료 6유로(약 9300원)를 내고, 안내원이 딸린 '기사의 집' 투어에 참가했다. '기사의 집'은 높이 26m의 천장 아래 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췄다. 13세기 중반에 처음 세워졌고, 1900년쯤 대대적 수리를 마친 이곳은 제2차 만국평화회의 당시엔 더 당당하게 보였을 것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당시 밀사들이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했던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른쪽 왕좌(王座) 위에 알파벳 'B'가 새겨져 있다. 베아트릭스(Beatrix) 현 네덜란드 여왕 이름의 첫 글자다. 여왕은 매년 9월 셋째 화요일에 황금마차를 타고, '기사의 집'에 와서 왕좌에 앉아 다음 해 시정 방향을 알리는 연설을 한다. 네덜란드 상·하원, 정부 각료는 물론 왕족과 외교관들까지 참석하고, 언론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 성대한 행사다. 1904년 빌헬미나 여왕이 시작한 이래 100년 넘게 이어지는 전통이다.

열강들이 각축하던 시기에 세계 평화를 도모한 만국평화회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제안으로 제1차 회의가 1899년 헤이그에서 2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헤이그가 회의 장소로 선택된 것은 네덜란드가 당시 대표적 중립국이었고, 여러 차례 평화회의를 개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07년 6월 제2차 회의가 속개됐고, 그해 10월 18일 폐막한 만국평화회의는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협약' 등 협약 13개와 선언 2개, 권고 5개 등 국제 사회의 새 규칙을 만들어냈으며, '국제중재재판소' 설치(1909년)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45개 참가국 대표들이 20세기 국제 사회의 새 판을 짜는 회의에 한창일 때, 회의장 밖으로 밀려난 밀사들은 일본의 침략과 한국의 독립을 알리는 외교 활동에 착수했다. 숙소인 드 용 호텔(Hotel De Jong·현 이준 기념관)에 태극기를 내건 이들은 6월 27일 각국 대표들에게 탄원서를 보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렸다. 7월 8일, 이위종은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발표했다. "일본이 기마병, 보병, 그리고 포병부대를 동원해 서울을 둘러싸고 왕궁을 포위한 가운데 1905년 11월 15일 이토는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소위 을사조약을 강요했다… 우의와 형제애를 말하면서 주머니를 훔치는 위선자인 일본은 백주의 강도보다도 더 비열하고 야수적인 것이다."

헤이그 중앙역에서 서쪽으로 운하를 건너면 프린세스가(街) 6·7번지에 닿는다. 붉은 벽돌색 낡은 3층 건물 앞에는 내부수리 때문인지 출입금지선이 드리워져 있었다.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당시 각국 대표단과 사회운동가, 기자들이 모이는 '국제서클(Circle International)'이 이 자리에 있었고, 그곳에서 이위종이 '한국의 호소'를 발표했다.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기대 일본의 주권침해를 고발하려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밀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일본의 위협에 밀려 강제로 퇴위당했다. 하지만 쿤 드 퀘스터(Koen De Ceuster) 네덜란드 레이덴대 교수는 "헤이그 특사단이 한국의 식민지화를 막지 못했지만, 한국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과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고종의 밀사들이 '길거리 외교'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흔히 일본의 방해공작을 거론한다. 그러나 최근 학계는 일본뿐 아니라 영국·미국·러시아 등 서구 열강들도 한국의 만국평화회의 참가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당초 한국을 초청했던 러시아는 1906년 이즈볼스키 외상 취임과 함께 영·일과의 타협을 추진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제2차 영일동맹(1905년 8월 12일)으로 한국의 보호국화를 승인했던 영국은 을사늑약 이후 주한 공사관을 철수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프랑스 등 다른 열강들의 공사관 철수도 종용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27일)으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승인한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약한 국가' 때문에 '문명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사태를 막자는 것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헤이그에는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과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 등이 국제기구 간부로 활약하고 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도 사찰관 3명이 진출해 있다. 김영원 주네덜란드 대사는 "네덜란드로부터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초청해달라는 로비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100년 전 회의 참석조차 거절당했던 세 밀사들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면 자신들의 활동이 헛되지 않았다고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동북아역사재단 공동기획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4822&menuId=103601&listType=2&from=&to=&curPage=1&logId=4898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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