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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4-01 21:31
영성과웃음 (책소개)
 글쓴이 : admin
조회 : 4,114  
영성과 웃음

 

  기독교에는 유머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유머는 가장 깊은 의미로는 이 세상을 초월한 궁극적인 질서와의 관계에서 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의 침착성, 신뢰, 심오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으로부터 웃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신다. 이 웃음은 온전한 의미에서는 약속이며 종말완성의 날에 실현될 것이다(그리스도교와 웃음,미야다미쓰오) 기독교의 웃음은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믿음의 웃음은 의미를 갖는다. 현재 상황이 비극적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최후에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영원한 가치가 완전히 파괴되고 상실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믿음의 웃음 덕분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1. 예수의 웃음 (디디에 디코앵, 동아일보,2000)

"가나의 혼인잔치,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이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찬다. 이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말한다. 처음엔 거절한 그가 결국은 일을 낸다. 모두들 이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말이 없다. 다만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웃고 있을 뿐이다."
 
예수는 웃었던 적이 있을까? 우리들에게 친숙한 성화들에서조차 예수의 웃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의문은 저자로 하여금 예수의 웃음을 찾아 떠나게 만들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가나 혼인잔치에서 웃었다는 말씀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 사건에 숨겨진 예수의 웃음을 찾아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보물상자라고 표현한다. 예수의 웃음을 찾아 보물이 숨겨진 밭을 뒤지듯이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뒤져보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들을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만나고 싶어한 예수, 그가 발견한 인간적 예수는 즐거운 소식을 전하러 오신 분이다. 그가 웃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놀랍고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러 오신 예수님, 비록 그의 생애가 아픔과 고통을 포함하고 있지만 죽음을 이겨내고 영생할 것이라는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웃음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열정에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다 버리고 뽕나무에 올라간다. 그를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묵어야겠다. " 식탁의 긴 의자, 삭개오가 초대한 영광의 자리에 앉은 예수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거린다. 예수가 말한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있으리라!" 구원이란 단어는 단순히 구함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이란 단어는 영원한 행복을 뜻한다. 


이제 예수는 잔칫상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맛있어 보인다. 삭개오가 그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이 맛있어 보인다. 그는 먹기 시작한다. 흉금을 터놓고 웃으면서 먹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누구에게나 하늘의 문을 열어준다. 

 

 그는 성경구절 사이를 돌아다니며 글의 행간에서 유쾌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고 있다. 예수의 웃음은 이 세상을 구원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웃음이다.

 

 

2. 웃음의 신학 디(리처드 G코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2001)
 오늘날 우리는 쉽게 웃을 수 없다. 매일 혼란한 상태를 보고 도덕과 전통적인 가치에 관해 논쟁하고 있다. 웃음의 자리는 없는 듯 하다.

 

"한편으로는 모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을 만들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즉시 전멸시킬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고 하는 시대에 유머를  혹은 유머에 대한 열망을 증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제임스 터버)"

 

과연 오늘날 웃음은 가능한 것인가? 종교는 거의 웃음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복음서는 예수의 웃음이나 심지어 미소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1세기 교부들은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이곳 지상에서의 자신들의 순례 여정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였다.


교부들은 "지금 웃는 사람들아! 그대들은 슬퍼하며 울게 되리니(눅6:25)"라는 주님의 경고 말씀에 대한 문자적 해석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교회와 교회의 선교에서 유머와 웃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학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나님자신의 놀라운 유머 감각을 발견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에 관한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웃음을 찾아가야 한다. 환희를 찾아 나서야 한다. 하나님은 참으로 순수하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가,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웃음을 우리와 하나님의 격렬하고 역동적인 사랑의 관계의 확실한 징표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웃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웃으신다면 우리는 웃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측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유머감각을 알고 있는가?

 

"요나서는 풍자와 놀람과 하나님의 웃음으로 가득 차있다. 요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끌려가는 예언자의 익살스런 이야기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성의 없고 열의 없는 노력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 하나님에게 격렬하게 불평을 한다. 하나님은 요나의 못마땅한 행동에서 끊임없이 유머의 실마리를 만들고 요나가 끝내는 웃을 수 있도록 심술궂게 도전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의표를 찌르기도 한다."

 

 하나님에게 유머 감각이 있다고 하는 신앙에는 암시적으로 하나님은 행복한 신이라는 확신이 있다. 하나님의 웃음은 사랑의 상징이다. 웃음이 설자리가 없는 듯한 이 시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항상 웃는 하나님과 더불어 웃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기독교의 믿음은 우리 사회를 참으로 해방 할 수 없을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것에 직면했을 때에도 예언자는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 웃는다. 그것을 삶을 긍정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교와 웃음  (미야다미쓰오, 가톨릭대학교 출판부,2000)

  조나단 스위프드가 성공회 성직자였을 때 냉소가로부터 "요나가 어떤 방법으로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 나올수 있었습니까?"하는 질문을 받았다. 스위프트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였다. "그것은 나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천국에 가서 요나에게 물어보죠" "그렇지만 요나가 천국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냉소자가 반문하였다. "그런 경우에는 당신이 직접 그에게 물어볼 수 있겠죠!"

 

우리는 인간이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흔히 말한다. 저자는 웃음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인간을 즐겁게 하는 웃음을 코믹'이라고 하고 파괴적 조크 즉, 인간을 찌르는 웃음을 위트라고 규정한다. 또 한가지 더 인간을 구원하는 웃음으로서의 유머를 구별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코믹이나 위트도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 삭막한 사회에 웃음을 주고 통쾌한 웃음을 통해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우리는 인간을 구원하는 유머, 해방이 있는 웃음(유머)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유머는 마음이 여유롭고 깨끗한 정신에서 생겨난다. 유머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유머는 깊은 통찰력과 연관되어 있다. 유머는 여러 가지의 긴장과 불안, 좌절감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유머의 '해방으로서의 웃음'의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웃음이 금기시되기도 하고 경박함으로 여겨져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웃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다만 주의하야 할 것은 웃음이나 유머의 도움을 빌어 현실문제를 얼버무려 버리거나 하나님말씀의 진지함을 희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웃음은 단지 표면적인 기쁨, 마음의 해소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고통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웃음이어야 한다. 기독교의 웃음은 인간이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이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로운 은총아래에선 결코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나타나는 웃음이어야 한다. 예수의 유머는 결코 유머를 위한 유머가 아니었다. 예수가 목표로 한 것은 확고한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 즉 구원이었다. 기독교 유머의 참된 의미는 헬무트 틸리케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미소지으면서 아파하실 것' 이라는 생각이다. 즉, 해방으로서의 웃음인 것이다.     

 

 더 보면 좋을 책
 다시 웃어 봅시다(찰스 스윈돌저, 죠이선교회 출판부,1998)
 성서의 빌립보서를 바탕으로 기쁨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우리가 오늘날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기쁨,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 책은 더 편히 쉬고, 긴장을 풀며, 주변상황이 우리의 태도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거부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동심으로 돌아가 삶을 바라보고 다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기쁨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스도의 유머(엘톤 트루블러드저, 카톨릭다이제스트,1992)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유머를 찾아보는 책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웃지 않으셨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유머를 분석했다. 그리스도의 유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유머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비교하고 있다.

( http://blog.daum.net/hahayoga/12361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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