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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25 14:24
사신신학 (死神神學, God is dead Theology)
 글쓴이 : admin
조회 : 7,355  
   사신신학.hwp (32.0K) [39] DATE : 2012-11-25 14:24:26
사신신학(死神神學, God is dead Theology)

사신신학(the death of God theology)은 1960년대에 주로 미국 개신교에서 일어난 급진적(急進的) 신학운동의 하나이다. 여기에 매우 다양한 견해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들 모두에 있어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현세계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며 인간의 성취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세속적인 삶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에서 실제로 죽었으며, 따라서 전통적 신관은 무가가치하다고 주장한 알타이저(T. J. J. Altizer), 초월적 실체인 하나님과 관계를 갖거나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어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반 뷰렌(Van Buren), 하나님의 속박에서 인간을 자유케 하며 인간의 책임과 행위를 완전히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신은 죽어야 한다는 하밀턴(W. Hamilton), 신은 인간적 언어로 알려진 신이니만큼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상일 수밖에 없다고한 바하니안(W. Vahanian)등이 있다.

ꊱ 사신신학의 기원

1)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영국과 미국에서 소위 세속화신학, 사신신학, 과정신학이라는 새 신학설이 돌풍처럼 휘몰아 신학계를 흔들어 놓고야 말았다. 이 새 신학을 한마디로 묶어서 전통적인 보수신학에 맞서는 급진신학 혹은 과격파신으로 불려지고 있다. 클라스 푸니아 교수는 이러한 새로운 급진신학운동을 총칭하여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라 이름하였다. 다만 신자유주의가 옛 자유주의 보다 다른 점은 후자가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의 신학을 가졌는데 반하여 전자는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의 신학을 부르짖고 있다.

2)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원래는 자유주의자들이었던 것과 같이, 사신신학자들은 원래가 신정통주의자들이었다. 반 뷰렌(paul van Buren)은 박사 과정 연구를 칼 바르트(karl Barth)하에서 하였으며, 그의 논문은 칼빈의 구속 견해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이 논문에서는 신정통주의의 견해를 지지하였으나, 교편을 잡은 이후 그는 즉시 신정통주의 견해에서 변절되고 말았다. 윌리엄 하밀턴(William Hamilton)은 알타이저(Altizer)와 뷰렌(van Buren)을 비교하여 말하기를, 반 뷰렌은 아직도 “신비주의적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너무나 옛날의 바르트 주의에 충성하고 있다”고 하였다.

3) 결국 사신신학의 기원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① 경험적 지식을 강조한 칸트(Kant)와 「이성 즉 신(神)」을 말한 헤겔(Hegel)의 합리주의(合理主義)에 있다.
② 모든 신한을 인간학(人間學)으로 축소시킨 포이에르바하(Feuerbach)와 “신의 사망”을 선고한 니체(Nietzche)에게도 책임이 있다.
③ 인본주의적 자유주의와 실존주의적 회의주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가령 알타이저(Altizer), 하밀턴(Hamilton), 반 뷰렌(van Buren)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ꊲ 사신신학의 발전

1) 사신신학의 운동은 드디어 1966년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에 의항 “기독교 무신론의 복음”이 제창되었고 이어서 반 뷰렌(Paul Van Buren)의 “복음의 세속적 의미”와 하밀턴(William Hahanian).콕스(H. Cox)등 미국내 일군(一群)의 급진주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이 신학의 운동이 신학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것이다.

2) 이 운동은 바르트(Barth)에게서 성(聖)과 세속, 신과 일반적인 rudga을 철저히 분리시키며 또한 신학적 용어와 철학을 분리시키는 것을 받아드렸고, 그 위에 기독교와 종교를 더욱 분리시킴으로 모든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중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틸리히(Tillich)에게서는, 유신론, 신의 인격화나 신에 대한 신화적 용어를 반대함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이고 본체론적이며 독신적인 용어는 있을 수 없다는 데에 불트만(Bultman)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으며, 결국에 가서는 신학 용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인간의 자기 이해에 관한 용어로 축소된다는 데도 의견을 일치한다.

3) 이 운동을 미국의 매스콤은 전국적 텔레비 방송망을 통하여「하나님의 죽음」을 노래하는 찬양대원들의 찬양순서까지 포함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였고, Time지 (1966년 4월 8일자)는 시사문제를 떠나 “신은 죽었는가” (Is God dead?)라는 표제를「커버스토리」로 삼아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ꊳ 사신신학의 주장

1) 대표하는 두 신학자를 꼽는다면, 알타이거(T. J. J> Altizer)와 반뷰렌(P. Van Burrn)을 들 수 있다.
① 알타이저는 그의 ‘기독교 무신론의 복음’을 통하여 분명하게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창조적 부정을 통하여 생명적 긍정(生命的肯定)을 찾을 수 있는「오늘에 사는 신학」을 제창하였다.
오늘의 삶이 전적으로 긍정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신관은 물러서야 하고 초월적인 신은 죽어야 하며 그 자리에 ‘말씀’ 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타이지는 구체적 해석을 ‘기독교 무신론의 복음’을 외치고 있다.
② 반 뷰렌은 ‘신은 죽음’을 알타이처럼 역사적 사건(歷史的事件)으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언어 분석학적(言語分析學的)으로 다루어 신개념의 무의미(無意味性)을 주장한다. 언어 분석학적으로 볼 때 ‘신(神)’은 폐어(廢語) 처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신’을 논하지 말고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재발견하여야 한다고 본다.

2) 사신신학자들은 말하는 주요한 강조점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과격 신학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살아 계시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역사적인 기독교를 부인한다.
② 이 새 신학자들은 세속 세계를 긍정한다. 신의 죽음은 사람을 초월에서 해방시켜 주며 세속 세계에게 해방시켜준다는 것이다.

ꊴ 사신신학의 비판

1) 반 뷰랜이 말한 복음은 과연 기독적 복음인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한 곳에 복음은 있을 수 없다. 반 뷰렌의 세속적 복음속엔 옛 아리우스(Arius)의 망령이 깃들어 있으며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열매가 맺혀 있다. 반 뷰렌이 내세운 기독론은 경험주의적 기독론(經驗主義的基督論)에 불과하다. 역사적 기독교의 신관(神觀)을 경험적인 기독관으로 축소시켜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리에 ‘자유인’ 예수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언어 분석을 통한 축소주의(Redutionism)는 실패 하였다.

2) 급진신학은 그 양상과 특색이 다르다고 볼수 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이 되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신학의 출발점이 합리주의적이다. 신앙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전통보다 르네상스의 정신을 따른다. 신학에는 성경적 전제가 선행되어져야 하며 거기에 대한 신앙 다음에 오는 이성을 통한 사색은 어디까지나 계시의존 사색이어야 한다.
둘째는 역사적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경험주의적 기독론으로 축소 시켜 버린 것이다. 미국 아트란타에 있는 감리교 신학교 학생들은 그들의 학보인「모티브」(motive)에 “신의 부고장”을 실리기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기독교일 수 있단 말인가?
셋째는 급진신학을 따르는 신학자들은 현실적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성경의 종말론을 거절한다. 오직 현재의 세상만 인전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의 현재성과 내세성을 동시에 가르치며 구원과 심판을 함께 가르친다.

3) 죤스(Ilion T. Jones)는 다음과 같은 사신신학이 낳은 사동아(四童兒)를 지적하고 있다.
① 하나님 신앙을 떠난 기독교
② 종교적 체험 없는 기독교
③ 개인의 회개 없는 기독교
④ 성경 없는 기독교

4) 오늘의 이와 같은 새 신학이 빚은 신학적 혼란 때문에, 우리는 이 시대에 알맞는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한 그들의 전도적(傳道的)이며 변증적 동기를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복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다. 즉 아무리 오늘의 인간이 물질 문명의 혜택으로 세속화된 도시 문명 속에 산다해도 그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본질적으로 고장난 인간인 것이다.

( http://cafe451.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9goa&fldid=OCVr&contentval=0001j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BF%C0%C4%A1%BF%EB&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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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서론
 Ⅱ.본론
1. 사상적 배경
2. 신학사상
    1)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을 주장하고 나온 동기
              2) 하나님의 죽음의 의미
      3)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의 메시지: 예수에의 복종
  4) 본회퍼 신학의 해석: 그리스도론적 세속화론
Ⅲ. 결론
Ⅳ. 참고문헌



- 사신신학 -
 “윌리암 해밀턴의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Ⅰ. 서론

    사신신학 196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미국 대중들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신학은 “신의 죽음(death-of-God)"이었다. 이 신학의 놀랄 만한 주장들이 대중 잡지에 널리 보도되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신학적인 관심들로부터 철저하게 멀어져 있었지만, 「타임」지의 표지에 게재된 하나님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신학은 우리가 모든 이데올로기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외관상으로는 통상적인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두 가지 신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첫째로,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초자연적인 낌새가 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공격한다. 그들은 오늘날 세속 정신과 같은 이론들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은 더 이상 경험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의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인간 예수 초점을 맞춘 진기라고 무(無)비판적인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타자를 위한 인간”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친 분이며, 그분 스스로가 이웃에게 봉사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하나님은 거부하고 예수를 받아들이는 “기독교 무신론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와 같은 주장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는 최대의 예언자”라는 말과도 같다고 주장하였다. 둘째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와 같은 사고는 이 세상과 인간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은 우리가 살다가 죽는 이 세상이다. 이러한 일시적인 관심은 우리가 살다가 죽는 이 세상이다. 이러한 일시적인 영역 속에서 우리는 신앙과 희망을 주장하고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어떤 초월 자에게로 향해서는 안되며, 이 지상의 삶에 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세상적인”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은 실재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범주들은  유일하게 쓸모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의 모든 부분들을 각자의 신앙과 신학적인 견해들을 포함하여 세속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가 예수를 따르기로 한다면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은 신앙보다는 봉사에 더 역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신앙은 바로 “복음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딘 윌리엄「현대신학의 흐름」 김주환 역(서울: 전망사, 1992), 54.
은 1960년대의 신학계에 신학의 흐름 속에서 있었던 한 조류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흐름은 시작하게 된다. 본 회퍼는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고통에 참여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이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는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역사에 참여해야 하며 그 속에서 활동하시며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매일의 삶 속에서 발견해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초월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인간,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세속 안에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대표적인 사신신학자인 토마스 알타이저와 웰리암 해밀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운동은 잠시 활발하다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이 신학적 주제는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 단지 이 두 신학의 운동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단기간에 전 세계에 화제를 가져오며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된 이 조류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과 남미의 해방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종교가 필요 없는 세계가 곧 성인된 세계이다’.라고 말하면서 ‘현대인은 성인된 세계에 살고 있는 성인된 인간이며 종교가 필요 없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신(神)죽음의 신학의 핵심적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신뢰성을 두는 실증주의적 태도로부터 나온 것이다.
    신(神)죽음의 신학은 기독교의 하나님은 현대인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무신론적 관점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하여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 세속화 신학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은 부정했지만, 그리스도는 부정하지 않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내재적인 하나님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주장하는 해밀톤의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전개해 나가며, 하나님 없는 세속적인 그리스도론은 어떠한 것이며, 그 영향에 대하여 설명해 나아갈 것이다.


1. 사상적 배경

    윌리암 해밀턴(William Hamilton)은 미국 뉴욕(New York)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철학박사(Ph. D.)학위를 받고 해밀턴 대학의 학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그후 1953년부터 로체스트 신학교에서 기독교 신학과 윤리를 강의하였다. 이성주, 「현대신학 Ⅱ」(서울: 성지원, 1994), 286.
 
    해밀턴의 저서들은 1956년에 출판된 「기독교적 인간」, 1961년에 출판된「기독교의 새로운 본질」, 1966년에 출판된「급진적 신학과 신의 죽음」, 「요한복음에 대한 현대 독자의 안내」,「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대한 현대독자들의 안내」등의 저서 외에도 많은 논문들이 있다. 이 세권으로 된 복음서의 안내서들은 특별히 평신도들을 위해 준비한 저서들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새로운 본질」이라는 저서가 그의 사상을 대변해 주고 있는 급진신학에 관한 저서이다. 같은책, 286.
 이 책에서 그는 니체나 까뫼 그리고 틸리히 등의 사상에 기초하여 신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개념에 대한 항거였으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부재한 문화 가운데 일어서서, 신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재출현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라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해밀턴이 본 기독교의 진전한 진수는 예수에 의하여 설정된 위치에서-이웃과 더불어 그들의 갈등과 고통에 참여하면서-신이 부재한 가운데 활동적이고도 세속적인 모습을 사는 것이다. 스탠리 그렌츠‧로저올슨, 신재구 역「20세기신학」(서울:한국기독교학생회출판부, 1997), 252.
 1960년대 내내 해밀턴은 신의 죽음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저술하고 강연 활동을 했다. 그는 사실보다 더욱 급진적이며 자의적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다.
신(神)죽음의 신학이 일어나는 데 큰 자극제가 된 것은 본회퍼의 사상인데, 그는 「옥중서간」에서 “무(無)종교적 시대”와 “무(無)종교적 기독교”, “성인된 세계”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이라는 혁명적 개념을 제시했다. 성인된 세계는 종교 시대가 지나가고 무종교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종교가 필요 없는 세계가 곧 성인된 세계이다. 현대인은 성인된 세계에 살고 있는 성인된 인간이며 종교가 필요 없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책임을 진다. 본회퍼는 기독교 전통적인 하나님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본회퍼의 사상은 세속화된 현대 세계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모색하던 급진적인 젊은 신학자들에게 방향제시가 되었다. 신(新)전통주의자였던 해밀턴은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은 후 전통적 신관의 형식을 부숴 버리는 것을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았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307.
 해밀턴은 이러한 영향에서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나서 본회퍼가 주장하던 즉, 현대의 기독교는 나에게 완전히 죽은 종교라고 선언했다. 기독교를 죽은 종교 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기독교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기독교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밀턴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를 지금까지 자기가 형성한 신학적인 구조 속에다 넣으려고 시도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지 아니하면 안 될 입장에 놓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발전시킨 신학사상을 포기할 수 없게 되자 기독교의 전통적 신관의 형성을 무너뜨리기로 결심을 하고 이 결심을 기반으로 급진신학을 집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밀턴은 급진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헤겔과 사르트르, 니체의 사상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에게 솔직히」라는 저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해밀턴은 급진신학의 의미를 철학자들과 사상가들, 문학자들, 현대의 지식인들이 신을 믿지 않는 데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성주, 「현대신학 2 」, 287-288.
 
    그는 본회퍼의 사상에 기초하여 전통적 기독교의 신관을 부정했다. 알타이저가 우주적 존재론적인 신의 죽음을 주장했다면, 해밀턴은 역사적 문화적 신의 죽음을 주장했다. 알타이저는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하나님이 사망한 것으로 보았으나, 해밀턴은 하나님의 죽음을 과거 200년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문화적 사건으로 해석했다. 알타이저는 기독교를 부인했고, 해밀턴은 하나님을 부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독교,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인정하였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311.

    해밀턴은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을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의 귀환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하나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상실을 의미한다. 기독교 전통의 하나님의 상실을 의미한다 같은책, 311.
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 체험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체험을 말한다. 해밀톤은 현대인은 하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인정할 힘마저 말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불안과 절망과 자기 의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줄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성인이된 까닭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부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같은책, 311.
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神)에 의한 희망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해밀턴은 하나님의 죽음 선언을 세속주의의 본질인 무신론을 원인으로 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無)의미하다 는 체험의 결과로 해석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죽었다는 주장이 일어난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2. 신학사상

    해밀턴은 1964년 「오늘의 신학」이란 잡지에 기고한 “목요일의 어린이”라는 논문에서 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오늘날 미국의 신학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신앙도 없는 사람들이며, 교회에 가지도 않고 조직신학에 관한 책들도 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신학자는 하나님과 교회뿐만 아니라 성서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해밀턴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의 경험 속에서는 알려질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 신학자들은 진지하게 설교하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성직을 수여하거나 성례전을 거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학자들에게 남아있는 주장은 무엇인가? 해밀턴에 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과 특별히 인간 예수를 향하게 되는 보다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한다. 예수를 “존재의 집(a place to be)”이며 “관점(a standpoint)"이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딘 윌리엄「현대신학의 흐름」 김주환 역(서울: 전망사, 1992), 56.
 
    해밀턴의 신(神)죽음의 신학은 무(無)신론적 그리스도론을 의미한다. 그 중심 사상은 “주 예수에의 복종”이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죽는 시간이 또한 예수에 대한 복종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 있다. “그리스도에게 매인 사람, 그리스도가 복종했듯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312.
라는 것이다.
    해밀턴이 하나님부재의 상황에서 찾은 하나님은 인간 예수였다. 예수는 윤리적 이상이며 타자를 위한 인간이었다. 그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는 한편, 인간 예수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자신의 신학적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았다 같은책, 312.
.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중심으로 한 윤리적인 기독교를 주장했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해밀턴은 예수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을 보여 주는 분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헌신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했다 스탠리 그렌츠‧로저올슨,「20세기신학」, 253.
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당시의 사신신학자 토마스 알타이저와 함께「급진신학과 신의 죽음」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으로 사신신학운동은 절정에 달했으나 곧 초점과 설득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논문들은 알타이저의 논문들과 같이 「급진적 신학과 하나님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본질」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란 말은 포에르바하-하르낙전통을 연상하게 된다. 즉 포이에르바하      는 신학을 인간학으로 만들고,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산물로 만들려고 했다. 하르      낙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예수의 종교, “하나님의 힘에 의한, 하나님의 눈 아래      있는 시간속의 영원한 삶,” “어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간들의 위치,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인데 역사적 탐구를 통해서 예수의 시대까지 파고 들어가 그리스도      교의 알맹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의 본질은 ’인간‘이고, 하르낙에 있어서는 ’알멩이‘이지만 해밀턴에 있어서는 ’신학적 스      타일‘을 의미한다. 스타일이란 구조와 형식의 문제요, 신학적 언어의 어조의 문제이다.      그리고 언어의 어조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오늘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박봉랑, 「신의 세속화」(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286-287.
과 「급진적 신학과 하나님의 죽음」에서 전개되는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론적 세속화론’, ‘무신론적 그리스도론’ 또는 ‘새로운 낙관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같은책, 286.
고 볼 수 있다. 

    이 신학의 조류는 1960년대가 지나면서 신학세계의 새로운 변화와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비종교적 기독교”, 혹은 “신의 죽음”같은 구호들이 사라지면서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등이 등장하면서 “해방” 혹은“희망”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일어나면서 사신신학의 흐름 알리스데어 헤론, 한숭홍 역, 「20세기 신학사상」(서울: 기독교문사, 1992), 240.
은 새로운 사조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이 신학은 ‘종말론적 신학’의 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물론 이 여러 종말론적 신학의 형태들은 1960년대 이후의 신학의 특성인 세속화 신학과 연결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면에서는 세속화 신학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의 죽음의 소리는 부활과 희망의 소리로 변했고, 세속화론은 그 출구를 희망의 신학에서 찿게되는 것 박봉랑, 「신학의 해방」(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743.
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 하나님의 죽음 해밀턴은 오늘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상황은 사람들이 ‘신성’, ‘거룩’등에 당황하고      있고, 불만족스럽고, 견딜 수 없기까지 한 것으로 본다. “현대 신학자들이 말하는 ‘거룩      한 하나님’, ‘신적 하나님’, 능력 있는 듯이 보이는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러한 신성은 부      재(不在)하다는 것이다.
의 신학을 주장하고 나온 동기
    해밀턴은 본회퍼에게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논설에서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과,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대화의 결정인 것은 바르트 신학이었고, 예술과 심리분석 또는 문학의 토론의 배후에는 틸리히의 영향이, 그리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이념적 정책과 실용적 정책 사이의 논쟁과 미국의 교만 문제의 논의의 배후에는 라인홀드 니버의 영향이 있었지만, 프로테스탄트의 젊은 층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신학적 영향은 본회퍼에게서이다”고 말했는데 이 결정적 영향을 받은 신학자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같은 논설에서 “본회퍼의 글은 과거와 현재에 쓴 글 가운데서 우리가 지금,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는 데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신학적인 말들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본회퍼의 「옥중서간」속에 있는 단편적인 글속에서 20세기 후반에 오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보았고, 이 새로운 시대에서 그리스도교가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그 형태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그 방향을 본 것 같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세 시대에 대한 긍정이며,  이 긍정은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개념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 부정이 하나님의 죽음이란 표현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것 박봉랑, 「신의 세속화」, 306-307 참조.
이라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의 죽음의 의미 같은책, 307-308.
 
    해밀턴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상실은 우상의 상실이다. 유신론의 하나님 상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상실, 그리스도교 전통의 하나님 상실이다. “그에게 예배, 찬양, 신뢰가 합당했고, 필요하기까지도 한 하나님이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하나님은 없다”. 그는 잡지「그리스도교의 위기」에서 “믿는 유대인은 메시야 없는  하나님을 가진 인간이고, 프로테스탄트는 하나님 없는 메시야를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한일이 있다. 해밀턴은 하나님의 죽음을 한 사건으로 본다. 그것은 “오늘날의 서양의 그리스도교의 특수한 그룹에 대해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을 서술하는 메타포를 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메타포이기는 하지만 신학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하나님의 부재’, ‘감추임’, ‘가리워짐’, ‘숨어 계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메타포는 참된 상실, 참된 초월의 참된 상실, 즉 하나님은 완전히 다시 돌이킬 수 없이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재가 완전히 제거된 죽음이다. “일어난 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가리움, 보이자 않음, 부재, 또는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음의 메타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나타낸다. 우리는 공공연하게나 암암리에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의 돌아옴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3)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의 메시지: 예수에의 복종
    해밀턴에 있어서 하나님의 죽음 신학은 그리스도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그리스도 ‘무신론적 그리스도론’이다. ‘하나님의 죽음의 시대’는 ‘예수에의 복종의 그리스도인에게 매인 인간,  그리스도가 복종했듯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해밀턴의 하나님의 죽음신학의 메세지는 “주 예수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예수에 대한 헌신과 그의 이름으로 인간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봉사를 주장한다. 하나님이 죽었다면서 예수에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네가 복종하려고 하는 대상을 너는 어떻게 선택하겠는가? 해밀턴은 그 대답을 “하나님은 나의 가치를 떠나서 완전히 그의 아들의 사건에서 나에게 자신을 알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예수는 그에게 의존하는 분, 그의 앞에 내가 서 있는 분, 그의 길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의 길이 될 수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 그의 삶, 그의 죽음에는 다른 곳에서 발견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끌린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나의 충성을 바친다. 다른 곳에도 권세 있는 가르침과 더 이상적이고 죽음을 움직이는 가르침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겠지만 나는 예수를 택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임의가 아니고 또한 무신론자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예수에 대한 복종이 그리스도인을 세상으로 내몰고 이웃들을 위한 사랑에로 움직이게 한다. 그는 그의 이웃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려고 하고 그의 형제의 모든 필요 속에서 ’예수가 되려고‘한다. 박봉랑, 「신의 세속화」(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308-309.
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말로 해서 현재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4) 본회퍼 신학의 해석 : 그리스도론적 세속화론
    해밀턴은 본회퍼의 「옥중서간」가운데서 두 가지 요소를 본다. 하나는 성인이 된 세계에 대한 긍정이다. 성인이 된 세계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자율의 세계로서 훌륭한 세계이다. 다른 하나는 성인이 된 세계의 환상은 「하나님의 불필요성」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은 상황에서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하겠다는 결단, 문제를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나아가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우리      의 짐을 덜기 위해서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하는 일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      게 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를 자율에 맡겨서 이러한 목표를 완성      하게 한다. 인간은 그 자신과 그의 세계에 대해서 보다 강한 힘에 호소함이 없이 책임      감을 떠맡도록 위임되어 있으며 요구받고 있다. 
    데이비드 O. 우드야드「현대 신학자들의 하나님 이해」, 한인철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54-55.
, 구원으로서의 종교의 부정을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개인적인 구원의 부정뿐만 아니라 종교일반의 부정이 있다고 한다. 해밀턴에 의하면 본회퍼는 필요성을 성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나 구조로서의 종교일반과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제의했다. 또한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일어나는 곳은 자기 안에도 세계 안에도 그 장소는 없다 박봉랑, 「신의세속화」, 310.
고 한다.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십자가의 신학」  본회퍼가 확신하고 있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무력하지만 그 약함이 바로 그의 힘의 형      태인 그러한 하나님이었다. 그는 유력성(powerfulness)의 약함보다는 무력성(powerlene      ss)의 강함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약하고 무력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가 우리와 함께 하여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의 종교성은 그로 하여      금 그의 고통 속에서 세상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힘을 보게 한다. 그러나 성서는 오직      고통하는 하나님만이 도울 수 있. 이것이 십자가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영광으로 오시      지 않고, 세상적인 영광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에게 실      재 하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무력성이다. 이것은 본회퍼의 전체 감옥생활      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성서 신앙의 이러한 차원을 활성화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러한 상황에서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교적인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잔인한  환상이었다. 이때 의미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그와 고통을 함께 나눈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하나님 신앙이었다.
    데이비드 O. 우드야드「현대 신학자들의 하나님 이해」, 56.
, 고난받는 하나님의 신학이다. 해밀턴은 본회퍼의 고난받는 하나님, 십자가의 신학은 주권, 능력, 권세, 거룩의 비유를 사용하는 하나님의 언어에 대한 반항으로 , 따라서 능력으로부터 무능력으로, 주권으로부터 하나님의 수난으로써 바꿔어야 할 하나님의 혁명을 제의하는 것을 해석한다. 해밀턴은 본회퍼가 이 편지들에서 가리키는 적극적인 방향이 무엇인가를 다음의 두 가지로 종합한다.
  첫째로, 본회퍼는 분명히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한 이 세대에 대해서 하나님의 필요성을 말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언어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변증법 자연, 사회, 그리고 사고를 포함하여, 가장 일반적인 법칙에 관한 과학이며, 실천에 있어      서의 방법이다. 변증법 사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철학적 사고의 시작과 더불어 나타났다. 
    변증법적 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의 의한 유럽의 황폐화와 사회적 위기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신학은 새로운 역사상황에 대응한      신학(위기의 신학 theology of crisis)이라고도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신은 인간과 무한      한 질적 차이를 가진 피안적 존재이고, 이 신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위기, 부      정, 심판을 초래한다. 신앙은 인간의 위기, 좌절, 무력, 절망 속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임석진 외, 「철학사전」(서울: 중원문화, 1989), 276-277 참조.
적 철학적 신학, 논쟁이나 문화의 비판으로부터 그 초점을 우리의 삶의 형태와 질의 변화에로 옮기도록 우리에게 강요했다. 그는 우리를 신학으로부터 윤리로 관심을 돌려서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 정치적 가시성에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스도교 진리의 증거를 갖도록 강요했다.
    둘째,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본회퍼의 종교의 하나님에 대한 반항의 배후에 중요한 그리스도론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무신의 세계의 손에서 하나님의 수난에 참여하도록 도전을 받는다는 환상이 전개된다. 세계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무(無)신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회퍼는 이전보다 더 하나님께 가깝다고 선언한다. 이 마지막 현상에서 하나님은 세계로부터, 그리고 양심과 자연, 역사로부터 자취를 감추었을는지 모른다. 그는 십자가의 감추이심 속에 불가시성으로 계신다고 한다 박봉랑, 「신의 세속화」, 311.
고 한다.
    결국 해밀턴은 본회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밀턴의 무신론적 그리스도론은 본회퍼의 복음의 비종교적 해석의 대담한 적용, 그리스도의 세속적 해석, 하나님의 세속적 이해의 하나임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불트만이 복음을 현대인의 이해를 위해서 비(非)신화화, 실존화했던 것처럼 해밀턴은 복음을 새속화, 윤리화했다 같은책, 314.
는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밀턴의 ‘세속적 성자’, ‘예수에의 복종’은 본회퍼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의 그림이었다.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은 물론 그리스도의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윤리문제에 강조를 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의미, 이 인간 속에서 낮아지시고, 십자가의 죽음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실재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생활화, 윤리화로 해석한 해밀턴의 본회퍼 해석에서는 이 근본적인 실재가 없어진 것이다. 거룩을 잃은 성전과도 같다. 이것은 ‘문화에 대한 특수한 신학’, ‘세속적 문화의 신학’ 또는 ‘그리스도론적 세속화 신학’이란 이름에 적절하다. 그의 무신론적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론적 세속화의 신학을 의미한다. 같은책, 315.



Ⅲ. 결론
    신(神)죽음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하나님은 현대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 신학은 무신론적 관점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하여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기독교,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 세속화 신학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평가를 한다. 신(神)죽음의 신학의 핵심은 무신론적 그리스도론이다. 해밀턴은 하나님은 부정했지만 그리스도는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내재적인 하나님을 주장했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314.
 우리는 이 신학이 신학의 흐름을 형성했다는 것에서 생각한다는 것보다 우리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상에서 복음주의 신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유와 상황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하시는 것을 계속적으로 발견해 가며 현대인들에게 해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속신학의 한 흐름을 장식했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Ⅳ. 참고문헌

박봉랑. 「신의 세속화」.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 「신학의 해방」.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이성주. 「현대신학 2」. 서울:성지원. 1994.
스탠리 그랜츠‧로저올슨, 신재구 역. 「20세기신학」. 서울: IVP. 1997.
목창균, 「현대신학논쟁」.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딘 윌리엄. 「현대신학의 흐름」. 김주환 역. 서울: 전망사. 1992.
알리스데어 헤론. 한숭홍 역. 「20세기 신학사상」.서울: 기독교문사, 1992.
데이비드 O. 우두야드. 「현대신학자들의 하나님 이해」. 한인철 역. 서울: 대한기독교          서회. 1995.
임석진 외. 「철학사전」. 서울: 중원문화. 1989. 

( http://theologia.kr/zeroboard/zboard.php?id=intro&page=1&sn1=&divpage=1&category=5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26&PHPSESSID=8c3eb62973adb129020983c8ba4f3f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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