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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06 20:58
바벨론 포로
 글쓴이 : admin
조회 : 1,531  
알란 밀라드 (ALAN MI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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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할 무렵에 앗수르 제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남부 바벨론의 갈대인들 총독 나보폴랏살(Nabopolassar)이 바벨론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B.C.626년) 다른 성읍들에서 점차 앗수르 수비대 병력을 몰아내었다. 그리고 나서 바사(Persia)의 산지에서 온 메대와 스구디아인들의 군대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공격하여 B.C. 612년에 드디어 니느웨를 함락시켰다(나훔서를 보라). 앗수르의 잔당은 2년 뒤에 완전히 소탕되었고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는 B.C. 605년 갈그미스에서 참패당하였다(렘 25장을 보라).

이리하여 갈대인들은 "비옥한 초생달"(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유역) 지역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앗수르 제국의 북부 주들은 메대의 통치권에 귀속되었다. 유명한 느브갓네살 왕은 B.C. 605년에 위에 올랐다. 그의 통치 첫 20여년간은 반역을 일으킨 주들을 진압하느라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이 말썽을 일으킨 주들 중에 유다가 들어 있었다.

갈그미스 전투 후에도 그는 여호야김(애굽이 지명한 왕)을 예루살렘의 왕 위에 그대로 두되 다만 충성을 맹세케 하고 볼모들을 잡아갔다(단1:1).유대인들은 그의 맹세를 무시하고 그의 나라를 다시금 애굽에 연결시켰다. 의분이 일어난 느브갓네살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김 왕은 항복을 거부하였다.

결국 여호야김 왕은 죽었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한 두달 통치하다가 성이 함락되었고 그 후에 그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다(B.C. 59년).폐허에서 발견된 배급목록에 따르면 그와 그의 가족은 국고에서 공급을 받았다. 유다의 왕위는 시드기야에게 물려졌으나 그도 역시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전임자들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애굽에 유혹되었다가 희생되고 말았다.

유다의 운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바벨론 군대가 다시 한번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완전히 파괴하였다(B.C.587/6년).살아 남은 시민 중 대다수의 무리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고 유다의 영토는 총독의 수하에 들어갔다.

포로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수도에만 아니라 여러 성읍들과 여러 마을들에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들은 현재까지 밝혀져 있는 한 공동체의 일부로서 자유로이 그들의 위치를 굳히고 그들 자신의 전통을 유지하며 또원하는 대로 그들 자신의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었다. 새로운 주위환경과 옛 바벨론의 일신한 영광(느브갓네살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건설한 것이 아니냐?"고 자랑할 만했다. 단 4:30)이 유다에 사로잡혀온 백성을 두렵게 했을 것은 틀림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벨론의 마르둑 신과 그의 수많은 시종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그들의 새로운 환경에서 유리한 생활조건을 찾아 내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가기를 사모하였다 (시 137편을 보라).

바벨론 문화의 이같은 영향은 에스겔 환상의 비유들과 다니엘의 이야기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그것은 모국의 개념들과 이방의 개념들의 혼합물이었다. 그 성읍의 거리와 일터에서는 애굽과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끌려온 포로들과 방문자들이 길리기아와 카리아 그리고 이오니아 등지에서 온 다른 민족들과 어울렸고 모두가 더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갈대아 왕들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예견했던 바와 같이 동편과 북편의 산지 사람들이 그 나라를 정복할 것이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어렴풋이 나타난 일들이 다니엘서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다. 메대는 스구디아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 점점 더 강성하여졌다.B.C. 585년에 메대의 멍에는 아나톨리아의 절반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메대는 B.C. 550년 그 속국왕인 바사 사람 고레스가 위에 올랐을 때 분명히 바벨론의 호적수로 부상하였다.

바벨론에서 벨사살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는 북부 아라비아에 살고 있었다. 그 왕이 돌아와서는 B.C. 539년에 그의 통치여영역 고레스에게 잃고 말았다. 새 왕의 정책들은 일반적으로 평화적인 것이었고 또 그는 수 많은 신전들을 회복시키면서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였다.

( http://kcm.co.kr/bible/jer/jer010.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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