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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7 22:04
북한에 교회가 없다거나 가짜라는 주장에 대하여
 글쓴이 : admin
조회 : 838  
북한에 교회가 없다거나 가짜라는 주장에 대하여
[제1기 할렐루야 평화통일아카데미 강의안 전문]


이 원고는 김병로 교수가 5월 3일 분당 할렐루야교회에서 진행된 '제1기 할렐루야 평화통일아카데미' 강의 전문입니다.   



북한에 교회가 없다거나 가짜라는 주장에 대하여

 

1. 북한의 기독교 인식

1992년 4월에 발간된 「조선말 대사전」에는 종전의 「조선말사전」(1981년 발행)이나 「철학사전」(1985년 발행)과는 달리 종교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해석을 대폭 반영하였다. 종교에 대해 “억압, 착취하는 도구,” “제국주의자들이 뒤떨어진 나라들을 침략하는 사상적 도구,” “인민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와 억압에 무조건 굴종하는 무저항주의를 고취하는 아편”으로 간주했던 부정적 평가를 삭제하고, “신이나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를 믿고 따르며,” “원시종교로부터 시작하여 불교, 기독교, 회교 등 수많은 종교와 크고 작은 류파들이 있다”는 등 보다 긍정적인 표현법으로 설명했다.

종교정책은 변화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종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며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종교는 “비과학적 세계관이다. 인민의 아편으로 사상을 흐리게 한다. 종파의 온상이다”라고 생각한다. 북한주민들은 반종교 교육의 결과 종교에 대해 일반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종교가 무조건 사람을 홀리고 마비시키는 두렵고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선교사들의 만행을 열거하면서 혐오감을 드러내곤 한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무섭다거나 섬뜩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두려운 실체로 이해하고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대부분 죽음을 느끼게 하며, 선교사는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 ‘승냥이’, “사람의 피를 뽑아 죽이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 정도로 섬뜩하게 각인되어 있다.

북한주민들은 기독교라는 말을 들으면 미국의 선교사가 조선소년이 과수원의 떨어진 사과 한알을 주워 먹었다고 하여 그의 이마에 청강수로 《도적》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일화를 떠올리곤 한다. 북한에서 반기독교 교육에서 대표적인 예화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선교사의 만행, 즉 선교사가 과수원에 떨어진 사과를 주은 어린이에게 청강수로 이마에 ‘도적’이라고 새겼던 사실을 고발한다. 이 사건은 북한의 소학교 교과서에 “미제 승냥이”란 주제로 실려 있어 어린시절부터 기독교 선교사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반미감정이 반기독교 정서와 일치되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않다.

반면 주체사상이 종교적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체사상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자긍심은 약 64%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믿음, 영생 등 윤리적·종교적 신념과 가치를 강조하며, 교리와 상징체계, 각종 집회와 모임, 행위규범과 윤리생활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신앙생활 유형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아마도 김일성의 기독교적 가정환경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유년시기에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 사상을 접하였던 김일성은 출애굽의 해방과 구원의 역사를 통해 일본식민통치의 억압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켰다는 ‘해방신화’를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평등,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기독교 사상을 자연스럽게 활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북한교회사: 저항, 수난, 흩어짐, 그리고 회복

해방직후 북한교회는 3,000교회 30만 성도의 규모가 되었고, 남한교회는 1,000교회, 12만 성도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자료는 1949년 북한지역에 대략 20만 명의 개신교인과 5만 3천여 명의 천주교인이 존재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국전쟁과 전후 종교탄압을 받으면서 북한교회는 극도로 침체되었다. 교회 건물에 대한 물리적 피해나 국민들 사이에서의 반기독교적 정서 심화도 큰 문제였지만, 전쟁 중 사망자와 월남자, 처형 등으로 인해 초래된 기독교 인구의 절대감소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와 관련한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전쟁 이후의 기독교 인구에 대해 이런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0만 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5만 명이 전쟁으로 사망하고 5만 명이 월남하여 남은 기독교인은 10 만 명쯤 되지 않았을까. 이 정도의 기독교인이 지금까지 생존하였다고 가정하면, 인구증가율을 적용하여 현재 북한의 잠재적 기독교 인구를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전쟁을 겪으면서 ‘탈교’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전쟁 후에 처형당한 신앙인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독교인으로 생존했던 신앙인들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5만에서 10만 명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캐나다교회협의회는 1950년 북한의 개신교인 규모를 12만명, 1,400교회로 파악한 것을 보면 이러한 추정이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쟁 이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1958년 5월 30일 당중앙위 상무위원회는 “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을 전군중적으로 전개한데 대하여”를 결정하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과 추방사업을 단행했다. 1958.12-1960.12 동안 중앙당집중지도를 실시하여 “종교인과 그 가족”을 분류했다. 이 때 파악된 종교인과 그 가족의 숫자는 약 10만 가구 45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당국은 1960년대에 조직적인 반종교정책을 전개했다. 반종교 활동이 정당, 직장, 학교, 근로단체 등 공공기관을 통해 공적으로 행해졌으며, 공식적인 종교의식은 사라졌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제외한 종교단체도 없어졌다. 기독교는 불법화되었고 북한지역에서는 어떤 종류의 예배의식이나 종교모임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1972.12 헌법개정을 통해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반종교 선전의 자유’(제54조)를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1972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활동과 3년제 평양신학원 운영 재개 등 체제협력적 기독교 활동의 시작되었고, 신약성서와 찬송가(1983년), 구약성서(1984년)를 발간하였으며, 1992년에는 신구약성경 합본을 「성경전서」로 출판하였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 평양에 봉수교회(1988년)와 칠골교회(1992년)를 설립하였다. 변화된 종교정책은 1992년 4월의 개정헌법에 반영되어 ‘반종교 선전의 자유’란 문구를 삭제하고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도록 했다. 1992년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에도 종교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1998년 4월에 발행된 ‘세기와 더불어’의 학습사전에는 기독교와 선교사에 대해서도 매우 전향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3. 북한교회의 유형: 공인교회와 지하교회, 그루터기교회

현재 북한의 교회는 공인교회와 지하교회, 그루터기교회의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공인교회: 봉수교회, 칠골교회, 가정예배소

공인교회는 봉수교회, 칠골교회와 같이 예배당을 갖춘 교회와 신자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513개의 가정예배처소를 포함한다. 공인교회 신자는 1만 2천명이며 이들은 대부분 선대 신앙인들의 후손들로 가족․친지 관계 때문에 당과 연맹에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 북한지역에는 30만 혹은 20만의 개신교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월남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생활하는 2대 혹은 3대 신앙인들로 가족들로부터 구두로 신앙을 전수 받고 막연하게나마 그 신앙을 유지해오고 있는 신자들이다. 당적 관리를 받으며 생활하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가짜로 배척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당국의 종교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1만명 가운데 절반(6천명)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등록한 신자이며, 나머지 절반은 조그련에 등록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등록되지 않은 신앙인들은 농촌지역처럼 방대한 지역에 신자들이 별로 없어 조직으로 묶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공인교회의 참가자들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노동당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당국에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이 공인교회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소수의 그루터기 신앙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동원된 사람들 사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 가운데는 선대 신앙인들의 후손들로 가족․친지관계 때문에 종교인 가족으로 동원되어 나온 사람들도 섞여 있다. 이들은 이른바 그루터기 신앙인 가운데 일부다. 봉수교회에는 과거 목사, 장로, 권사의 자녀들로서 최소한 20명 이상의 그루터기 신자들이 출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봉수교회에서 북한성도들과 예배를 함께 드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봉수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적어도 1/3 혹은 그 이상이 신앙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일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가 하면, 봉수교회나 칠골교회에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 매주 교회에 출석하면서 변화를 받기도 한다. 봉수교회에 출석하던 한 핵심당원은 매주 예배에 참석하면서 설교말씀을 듣고 성경을 조금씩 읽던 중 예수를 믿게 된 경우도 있다. 혹시 자기의 의사와 무관하게 동원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고,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는 가운데 복음의 역사는 일어날 수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남한교회와 똑같은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진짜’ 교회이고, 남한과 조금 다르면 ‘가짜’라고 정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남한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 중에는 ‘가짜’가 없겠는가! 북한에 존재하는 교회를 공산주의 정권의 통제와 감시 속에 제한된 신앙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속의 교회’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신앙의 문제를 우리의 잣대로 속단하지 말고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가정예배소는 북한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북한측에서는 북한에 약 513여 곳의 예배처소가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평양과 남포, 개성에 각각 30개소, 평안남북도 각 60개소, 그 외의 도에 40개소씩 존재하고, 양강도와 자강도는 산간지역이어서 가정교회가 아직 없다고 한다. 이들 가정예배소는 장로나 집사 등 평신도에 운영된다.

2) ‘지하교회’: 식량난 이후 탈북과 전도로 개종한 신자들

남한의 선교단체들은 적어도 수천명에서 수십만명까지 북한의 지하교회가 당국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하교회 종교활동은 1997년부터 정보요원들의 침투공작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황장엽씨의 망명 이후 보위사령부(96년 조직)에 탈북자 침투반을 운영하면서 탈북자에 대한 선교정보를 조직적으로 입수하고 있다. 중국의 선교사들은 비밀스럽게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까지도 거의 대부분 북한 정보기관의 통제권 하에 들어가 있다. 북한의 정보기관은 이러한 루트를 역이용하여 지하교회 조직을 통해 정보도 얻고 외화벌이도 하는 등 심각한 문제점이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지하교회의 규모나 실체가 실제보다 과장되게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활동에 대해서도 보도되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교회는 북한에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통로가 되고 있고, 또 그루터기 신앙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줌으로써 이들을 격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3) 그루터기교회: 과거 기독교인 가족들

가족․개인 등 개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그루터기 교회 혹은 ‘지하2층교회’는 외부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존재한다. 북한 내에서 장려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신앙인 가족의 개별적 신앙행위는 묵인되고 있다. 그루터기 신앙인들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5만~1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루터기 신앙인들이 북한의 공인교회로 동원되거나 지하교회와 연결되어 활동한다. 북한의 교회는 그루터기가 중심을 이룬다. 북한의 개방과 더불어 이 그루터기 교회 신앙인들의 역할이 앞으로 매우 중요하게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에는 해방이후 신실하게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신앙인의 뿌리가 남아 있다. 월남한 수많은 기독교계 인사들이 북쪽에 남겨놓고 온 가족들과 그곳에서 순교한 신앙인들의 후손들이 바로 그 뿌리이다. 이들은 50년 가까이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정부당국과 가족들의 냉대 속에서도 꾸준히 신앙을 지켜왔다. 더러는 탈냉전 15년간 외부의 꾸준한 노력으로 신앙활동을 재개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북한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신앙의 뿌리가 깊게 내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개인적 차원의 신앙활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되기도 한다. 또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 즉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 촉진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부득불 신앙활동을 허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북한의 기독교인 가족들은 거주제한 등 비당원보다 공민권상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다.
 

4. 북한교회의 완전한 회복을 위하여

북한의 교회는 공인교회와 지하교회를 막론하고 결국 그루터기 신자들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1958년의 대박해로 흩어지기 시작한 그루터기 신앙공동체는 그 후 가족․친적 내 개별적 혹은 소규모 모임으로 존재하였으며, 1972년 이후 공인교회로 동원되기도 하고 1995년 이후 지하교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교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루터기 신앙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은 2대, 3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들로부터 구두로 신앙을 전수 받고 막연하게나마 그 신앙을 유지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북한당국으로부터 당적 관리를 받으며 감시와 통제 하에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공인교회와 지하교회에서 차별과 통제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가짜라고 배척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마처 이들을 외면한다면 이들은 이중적 차별을 받는 불행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이들이 성경지식이 낮다고 하여, 혹은 신학적 지식이 무지하다고 하여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 성경지식의 많고 적음이 결코 신앙생활을 잘 하는가 못하는가를 좌우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안다. 공인교회와 지하교회에서 신앙생활에 참여하고 있는 그루터기 신앙공동체가 싹을 내고 온전한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루터기 신앙공동체는 북한 내에서 복음의 수용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라는 점에서 선교적 의미도 매우 크다. 북한교회의 부흥과 북한선교를 위해 그루터기 신앙인들이 중요함을 인식하여 앞으로 이 그루터기 신앙공동체의 실체를 밝히는데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 참고문헌
김병로,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와 종교실태」(서울: 통일연구원, 2002)
김일성, 「김일성저작집 6」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김정일, 「김정일 선집 1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
조동진, “역사적 전환기의 전방위 선교로서의 대북활동,” 「2001 한기총 통일선교대학 강의자료」
캐나다교회협의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보고,” 「신학사상」(1989년 여름)
강인철, “현대 북한종교사의 재인식,” 김흥수 엮음,「해방후 북한교회사」
이항구, “북한의 종교탄압과 신앙생활,” 「현실초점」(1990년 여름)
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대사전 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2)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세기와 더불어》학습사전 1」(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8)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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