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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KDCED > 선교/교회 > 성지순례 > <성지순례-55>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출애굽 여정의 순례를 마치며 - 요르단 왕국의 수도 암만에서 이스라엘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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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03 23:08
<성지순례-55>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출애굽 여정의 순례를 마치며 - 요르단 왕국의 수도 암만에서 이스라엘 입국
 글쓴이 : admin
조회 : 4,347  

(1) 암만에서 이스라엘로 입국하는 국경 포인트  (2) 요르단 서편으로 황무한 지역을 통과한다.  (3) 암몬사람들의 성읍이었던 아벨 그라밈(Abel-Keramim) 지역  (4) 엘르알레 지역- 헤스본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서 있다.  (5) 오르단 국경지대에 가까워지면서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6)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사실상의 국경과 다름없는 요단강  (7) 요단강 건너 제리코(여리고) 인접지역의 풍요한 모습, 영적인 가나안도 그러하리라.



  어제 페트라를 거쳐 카락성, 아르논골짜기를 지나 메드바와 느보산을 둘러보고 저녁 늦게 암만의 Amaken Plaza호텔에 도착하여 곤한 잠에 빠져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로 넘어가기 위한 짐을 싸야 했다.

  암만(Amman)은 현대의 하시미트 요르단 왕국의 수도로서 행정부와 왕궁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약성서 신명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고대 근동의 주요한 고대도시의 하나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구약시대 '암몬의 랍바 성읍(신 3:11)' 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물이 풍족한 지역이었으며, 지금부터 약 9천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여 기원전 13세기 암몬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랍바를 중심으로 했던 암몬 왕국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어서 두 나라는 적대적 경쟁 관계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족속들의 가나안 진입과 관련하여 암몬 자손의 땅을 지나 여러 중요 도시들을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민 21:24-35, 신 2:19-37)

  현재 암만 시내에서는 많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있고, 암만이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유적들도 많다. 또 시내의 중심가에는 아직까지도 가끔 연극과 음악회 등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로마식 원형 극장과 역사적인 유물들을 관람할 수가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정상 이것들을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7시 30분쯤 전용버스에 짐 가방을 싣고 호텔을 출발하였다. 요르단 서쪽 지역을 경유하여 이스라엘에 입국하기 위해서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대망의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으로 버스를 탄 우리는 얼마 후에 요단강 동쪽에 있던 암몬사람들의 성읍이었던 아벨 그라밈(Abel-Keramim)을 지났다. 아벨 그라임은 암몬 땅에 있었던 한 성읍으로 사사 입다가 암몬 족속과의 싸움에서 대승하면서 이곳까지 그들을 추격을 했던 곳이다.(삿 11:33).

  “입다가 암몬족과 전투를 할 때 아로엘에서 민낫까지 20개 성읍을 치고, 아벨 그라밈까지  도륙하니 암몬족이 이스라엘에 항복하였더라.”(삿 11:33)

  포도원의 목초지로 알려진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암만으로부터 약 14km 떨어져 있는 지금의 나우르(Naur) 시로 추측한다. 여기서 잠시 달리면 엘르알레를 지난다. 나우르에서 헤스본 방향으로 3km정도 거리에 위치한 엘 알 마을의 오른쪽 바위언덕에 키르벳 엘르알레가 있다. 해발 400m 정도의 높이에 그리스, 로마시대 유적지가 보였다.

  헤스본성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마을 근처인 895m 산지 언덕에 시혼 왕의 수도였던 헤스본 유적지가 있다. 암만에서 19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불과 60km, 요단강까지는 25km거리에 있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히스반(Hisban)으로 불린다. 차는 계속해서 사해의 위쪽에 있는 요르단 골짜기인 싯딤골짜기를 지나고, 사해(DEADSEA) 18㎞지점을 알리는 지역(해발 제로 포인트 : SEA LEVEL)에 잠시 내려 기념 촬영을 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차는 황량한 벌판을 달려 드디어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 인근지역에 접어든다.  모래언덕이 이어지는 구릉 곳곳에는 국경을 지키는 요르단 초소들이 보인다.

  킹 후세인 다리(요르단)가 알렌비 다리(이스라엘)로 바뀌며 모세의 출애굽의 목표인 약속의 땅, 그리고 예수의 활동 무대였던 이스라엘로 들어선다.  “요단강입니다.” 다리 양편으로 성서 속의 요단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이라기보다는 시냇물처럼 폭이 좁은 물줄기가 깊숙이 흐르고 있었다. 물의 양이 하도 적어 우리가 생각하는 강이라는 개념을 훨씬 벗어나지만, 그래도 광야와 사막으로 펼쳐진 이곳의 지역적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사시사철 이렇게라도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의 자격을 얻을 만했다.     
  열두 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등 세 지파 제외)를 대표하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널 때 그들의 감회가 어떠했을까? 그들은 오래 전(BC 2100년)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족장으로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의 씨로 팔레스타인에 한 민족을 이루어 그들을 통하여 언젠가는 모든 세계를 구원하려고 하신 계획들을 상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모세를 부르셔서 430년(BC 1876~1446) 동안의 애굽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출애굽을 성취할 때까지의 열 가지 기적적인 재앙을 회상했을 것이다.  이어 고센에서 홍해로, 시내산에서 바란광야로, 여기서 나흘길을 방향을 바꿔 애굽으로 돌아가는 파란만장한 40년 간의 광야생활을 회상하며 그들의 불순종을 가슴치며 회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속된 땅을 볼 수 있는 비스가산(느보산)에 이르러 자기들을 여태까지 인도했던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를 새 지도자로 삼고 가나안 정복을 준비했던 마지막 순간들을 회상했으리라.   

    정말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처지였다.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도록 홍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춰서 밤낮으로 진행할 수 있게 했고(출 13:21-22), 굶주렸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셔서 양식으로 삼게 하셨고,(출16:1-36), 심한 갈증으로 견딜 수 없을 때 마실 수 있는 물을 주셨고(출14:1-15:26, 출 17:1-6), 곳곳에서 아멜렉을 비롯한 숱한 이방인의 군사와 싸워 이기게 했다.(출 17:8-15 등)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출애굽의 과정과 가나안 입성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로만 가능했다는 사실 앞에서 그저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음의 땅 애굽나와 가나안 향하였네 / 홍해 건너 그 광야 길 멀고도 먼 길
          배 고플 때 만나를, 목 마를 때 생수를 / 방황할 때 구름 기둥 불 기둥으로
          여호와 배반해도 그 사랑 한량 없어 / 젖과 꿀이 흐르는 주 허락하신 땅
          들어가게 하셨네 감사, 감사하여라.
                         
  옛날에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을 건넌 것처럼 여호수아도 요단을 가르고 마른 땅을 건넜다. 가나안 입성 당시는 마침 모맥을 거둘 때여서 물의 양이 넘쳐났지만, 갑자기 요단강 물의 흐름이 끊기고 벽을 이루어 마른 길을 건넜던 것이다.(여호수아 3:7~17)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이처럼 천지의 격변이 일어난 것은 제사장의 헌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법궤의 거룩성 때문일 것이다.  요단강도 법궤의 거룩성을 알고 멀리 물러갔다(16절, ‘멀리 아담까지’). 강물도 법궤를 가까이 할 수 없음을 알고 자연의 모든 질서를 거슬리면서 뒤로 물러간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 점을 포착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114:1~8)

  이스라엘 백성이 벅찬 감격의 눈물로 건넜을 그 요단강을 우리는 버스를 타고 편하게 다리 위로 건너간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의 마음으로 하나 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목소리로 찬송가 347장을 불렀다.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맘에 준비 다하여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시험 환난 당해도 낙심 말고서 맘에 걱정 버리고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앞서 가신 예수님 바라보면서 모두 맘을 합하여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일할 곳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담대하게 나가서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참으로 벅찬 감격이었다. 이 찬송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하는 내용이 배경이 된 것이다. 가나안 여정을 마무리하는 우리 일행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면서 이 찬송가 가사의 내용처럼 믿음의 싸움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과 그러기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야 할 것을 자신에게 새롭게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신앙 또한 역동적으로 전진해 나갈 때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건너 이스라엘 땅에 이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답게 요르단의 삭막한 모습과는 달리 기름지고 윤택함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물이 풍성하고 과일이 탐스럽게 열리는 여리고가 바로 지척이었다. 

  나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으면서, 먼저 출애굽 여정의 순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성서의 배경이 되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밟아보며 세상을 향하신 그분의 뜻을 헤아려보고,  늦었지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말씀(성서)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불태우게 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 http://www.poemlane.com/bbs/zboard.php?id=moeum&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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