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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3 08:58
노년의 역사 - 노인을 위한 나라는 18세기에 생겼다
 글쓴이 : admin
조회 : 1,860  

그림설명: 중세와 르네상스시대까지도 유럽에서 노년은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으나 18세기를 지나며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림은 18세기 후반 독일 화가가 그린‘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 노년의 여성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고대부터 현대까지 노년 살펴 과거에도 '찬밥 노인'은 존재
프랑스혁명 이후 원숙함 존경… 20세기 각종 복지제도가 '마음은 청춘' 시대 열었다

노년의 역사
팻 테인 등 지음|안병직 옮김|글항아리|504쪽|2만8000원

중세 유럽엔 '여물통과 삼베' 설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늙은 아버지를 보살피는 데 싫증이 난 아들이 식탁 대신 여물통으로, 침구도 거친 삼베로 바꿔버렸다. 손자가 "나도 아버지가 늙으면 쓸 테니 삼베 절반은 남겨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할아버지(할머니)를 산속에 버리고 오자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버릴 때 쓰게 그 지게 놔두라" 했다는 우리의 '고려장(高麗葬)' 설화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구조다.

인류 역사에서 노년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고령화 사회를 맞은 우리에게 이 책(원제 The Long History of Old Age)은 서양 문명이란 거울에 '노년'을 비춘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팻 테인 연구교수를 비롯한 노년 연구 전문 역사학자 7명은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중세·르네상스기를 거쳐 20세기까지 시대별로 '노년'이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 꼼꼼히 살핀다. 또 230여컷에 이르는 도판은 서양 역사에서 노년이 어떤 이미지로 형성·변화해왔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존경받는 노인?

서양에서는 노년에 관해 이른바 '근대화론'이 있다. 즉, 근대화·산업화 이전에는 노령자들이 지혜의 상징이었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물통과 삼베' 설화에서 보듯 현실은 달랐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근대화론의 맹점은 '과거 장수한 노인은 희귀했다'는 잘못된 가설 때문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현대에 비할 수 없이 높기는 했지만 이 위험한 시기를 돌파한 사람은 장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기 1세기 무렵 로마제국 인구의 6~8%가 60세 이상으로 추정되며, 고대·중세에 이르기까지 군역(軍役) 등이 면제되는 나이가 60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고령자가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나이만으로 존경받고 편하게 살았던 노년은 적어도 서양 역사엔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각종 작업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은 많은 경우 구박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놓고 "노령자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고 비난했고, 14세기 프랑스 작가 기욤 드 데귈레빌의 책에도 '나태, 오만, 아첨, 위선, 질투, 배반, 색욕'의 상징은 늙고 추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많은 동화에 등장하는 '마귀할멈'의 이미지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중세 이후까지도 이어졌다. 18세기 브란덴부르크 지역 등 일부 도시 성문에는 큰 몽둥이가 걸려 있었다. 거기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다'고 씌어 있었다. 노인들은 가능할 때까지 독립적으로 경제·생산활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공통적으로 '죽기 전까지는 눈을 감지 말라'는 격언이 퍼져 있었고, 미리 자식들에게 재산과 권력을 나눠준 노년의 비참함에 대한 공감대를 집약해 극화(劇化)한 것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었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사상가 키케로의 말은 시대를 넘어선 진리였다는 것.

◇노인의 복권

부정적이었던 서양의 노년 이미지가 호전된 것은 18세기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다. 혁명 세력은 지역별로 '노인 축제'를 열면서 노인들에게 애국적 이미지를 부여하려 했다. 종교적 영향도 있었다. 교회가 지배하던 중세엔 노년이란 최후의 심판에 다가선 사람들이었지만 종교 대신 이성을 앞세운 계몽주의자들은 현실적으로 원숙하고 경험 많은 노년의 장점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추악하게 형상화되던 노년의 초상은 1768년경 독일 화가 크리스티안 자이볼트의 '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에서 보듯, '곱게 주름진 얼굴'로 아름답게 묘사되기 시작했다.

노년에 대한 가장 극적인 변화는 역시 20세기에 찾아왔다. 의학의 발달로 고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각종 복지 제도가 마련되고 노인들은 나이듦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늙은' 것"이라는 한 60세 산파의 말처럼 이제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은 세계 노인들의 공통어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복지 제도가 갖춰져도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의지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키케로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 문헌 목록만 번역본으로 22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정보를 에세이로 담아낸 글이라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도판 230여컷과 설명만 읽는다면, 서양 역사 속 '노년'의 변화를 파노라마 사진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2/201210120287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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