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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8-08 21:29
앤소니 로빈스 <추수감사절에 찾아 온 손님>
 글쓴이 : admin
조회 : 1,479  
우리 식구가 돈과 먹을 것이 떨어진 어느 추수감사절 날, 누군가 찾아와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렸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문을 열어 보니 한 남자가 음식 바구니와 커다란 칠면조, 그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요리할 냄비까지 든 커다란 상자를 안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그 낯선 사람이 말했다.
“저는 당신 친구가 보내서 왔습니다.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하지만 당신이 어떤 도움도 거절하리라는 걸 알고 저를 대신 보낸 겁니다. 즐거운 추수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했다.
“안 됩니다. 난 이런 걸 받을 수 없소.”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은 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전 다만 심부름꾼일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 일은 내 삶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언젠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똑 같은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다.

열아홉 살이 되어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만의 추수감사절의식을 시작했다. 그날이 되면 우선 슈퍼마켓으로 가서 한 집이나 두 집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음식을 샀다. 그런 다음 배달부 차림을 하고 근처의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상자 안에다 나는 음식과 함께 내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추수감사절의 일을 설명하는 쪽지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쪽지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내가 이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바라는 것은 당신들도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똑 같은 일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실천하는 이 추수감사절의식을 통해 나는 그 동안 내가 벌어들인 어떤 경제적인 금액보다 많은 것을 얻었음을 고백하지 낳을 수 없다.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사업관계로 집을 떠나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는 온 식구들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된 것을 무척 마음에 걸려 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아내는 늘 집에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날은 단 둘이서 호텔방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은 죽은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매는 것보다 살아 있는 생명들에게 장식을 하는 것이 어때?”

아내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날 처다 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내가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해 온 일을 고백했다. 아내는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할렘가로 갑시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또한 우리가 무얼 나눠 줄 수있는가 알아봅시다.”?

나는 마침 우리와 함께 추수감사절 파티에 참석한 사업 동료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들 부부들은 내 제안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떼밀며 말했다.
“자, 어서 갑시다. 할렘가로 가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몇 명을 도와 줍시다. 우리는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하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는 그저 배달 온 사람이 되면 되는 겁니다. 예닐곱 가구가 한 달 동안 먹을 충분한 음식을 삽시다. 우린 많이 가졌지 않습니까.? 자 어서 가서 그렇게 합시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칠면조나 먹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사를 주위에 나누는 일이지요. 어서 갑시다.”

나는 그 전에 라디오 인터뷰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업 동료들에게 봉고차를 한 대 구해놓으라고 부탁했다.

내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자 그들이 말했다.
“우린 그 일을 할 수 없게 됐소. 뉴욕 어디도 봉고차가 없소.. 렌터카 회사마다 모두 전화를 해 봤는데봉고 차가 다 떨어졌다는 거요. 아무리 해도 구할 수가 없었소.”

내가 말했다.
“우리가 어떤 걸 진정으로 원하면 우린 그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에요. 뉴욕에는 봉고차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요. 단지 우리가 갔고 있지 않을 뿐이에요. 나가서 한대 구합시다.”

그들이 주장했다.
“우리가 사방에 다 확인해 봤소.. 봉고차를 가진 곳이 한 군대도 없다니까요.”

내가 말했다.
“이리 와서 거리를 내려다 봐요.. 저걸 봐요. 저 봉고차들이 안 보입니까?”

그들은 보인다고 대답했다. 내가 말했다.
“그럼 내려가서 한 대 붙잡읍시다.!”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서 지나가는 봉고차를 세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뉴욕 운전사들에 대해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가로막으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속력을 더 냈다.

그래서 우리는 신호등에 막혀 정지해 있는 차들에게 시도했다. 우리가 다가가서 유리창을 두드리자 운전자들은 유리문을 내리면서 수상적은 눈초리로 우릴 처다 보았다.

내가 말했다.
“안녕하시오! 오늘이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려고 하는데 우릴 할렘가까지 좀 데려다 주시겠소?”

할렘가 라는 소릴 듣자마자 운전자들은 재빨리 외면을 하고는 황급히 유리창을 닫고 달아나 버렸다. 그들은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는 더 솜씨 있게 부탁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운전자들이 유리문을 다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린 부드럽게 말했다.
“알다시피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혜택을 받지 못한 몇몇 가정을 도와 주고자 하는데,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뉴욕시의 한 빈민 지역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약간 효과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릴 태워다 주면 백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것은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할렘 가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당장 거절하며 차를 몰고 달아났다.

그렇게 스무 대가 넘는 봉고차에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내 사업 동료들은 이제 계획을 포기할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말했다.
“확률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 법이에요. 누군가는 우리의 부탁을 들어 줄 겁니다.”

그때 우리가 바라는 완벽한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와서 멈췄다.. 다른 차들보다 훨씬 커서 우리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믿음직한 차였다. 우리는 다가가서 유리문을 두드리고 운전자에게 말했다.
“우리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까지 태워다 주시겠소? 그렇게만 해 주면 백 달러를 드리겠소.”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한테 돈을 줄 필요는 없소.. 당신들을 태워다 주게 되어 나도 기쁘오. 좋소, 내가 당신들을 이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데려다 주리다.”

그는 우리가 차에 올라탈 수 있도록 운전석 옆 좌석에 벗어놓았던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가 그것을 머리에 쓰는 순간 나는 그 모자에 ‘구세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존 론던이었으며 그는 사우스 브롱스 지역의 구세군 대장이었다.

우리는 다들 흥분해서 함성을 지르며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가 말했다.
“당신들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지역으로 데려다 주겠소.. 그런데 말해 보시오. 당신들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나는 그에게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뭔가를 되돌려줌으로써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해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론던 대장은 할렘가의 비벌리 힐즈라고 할 만한 사우스 브롱스 지역의 빈민가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먼저 수퍼마켓으로 가서 많은 양의 음식과 바구니들을 샀다. 일곱 가구가 30일 동안 먹을 충분한 양의 음식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씩 포장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사람들에게 배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한 어떤 건물에는 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혹한의 계절에 무단 거주자들처럼 전기도 없고 난방시설도 없이 쥐와 바퀴벌레와 오줌 냄새에 뒤섞인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우리가 하는 작은 일에서 오는 기쁨 또한 큰 것이었다.

당신이 어떤 것을 진정으로 원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기적은 이와 같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봉고차가 한대도 없는’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도.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편집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류시화 옮김)에서

Anthony Robbins는 인성개발훈련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권위자로 <Unlimited Power> 와 <Awaken the Giant Within: How to Take Immediate Control of your Mental, Emotional, Physical and Financial Destiny!> 등의 베스트셀러들을 저술하였을뿐 아니라 지금은 <The Anthony Robbins Foundation>을 설립하여 자선사업을 벌리고 있다.

( http://www.webegt.com/cgi-bin/egt/read.cgi?board=Shortstories&nnew=2&y_number=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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