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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30 10:27
수용소 소년③: 교수대에 목이 걸려 발버둥치는 엄마를 바라보며…
 글쓴이 : admin
조회 : 1,707  

지난해 국회 외통위 국감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통일부를 통해 제공한 북한 수용소 사진. 14호 관리소-평남 개천. /조선일보DB




◆공개 교수형에서 목에 줄이 묶여 발버둥치는 엄마를 보며… 총탄에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튄 형의 머리

5월에 지하감옥에 끌려들어 간 신씨가 다시 햇빛을 본 것은 11월이었다. 부자(父子)는 군중과 함께 처형장에 서 있었다.

끌려나온 사형수는 엄마와 형이었다. 먼저 엄마의 차례. 교수형을 앞두고 처형장에 앉은 엄마는 군중을 둘러봤다. 신씨는 엄마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사형이 집행됐다. 눈가리개 없이 목에 줄이 묶인 엄마는 한참을 발버둥치다 숨을 거뒀다. 신씨는 엄마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형은 엄마와 달리 나무 기둥에 묶여 총살당했다. 총성과 함께 형의 머리를 기둥에 고정하기 위해 묶어둔 밧줄 사이로 총탄이 비집고 들어갔고,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신씨는 이 광경에 공포와 충격을 받았지만, 형의 죽음 역시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신씨, 국내 입국에선 가족의 밀고자를 다른 사람으로 꾸며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는 비난이 무서워 숨겼다”

신씨는 탈출 이후 한국 땅을 밟기 전,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냈다.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밀고자는 신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신씨가 한국에 들어온 직후, 국내 언론들은 신씨의 꾸며낸 이야기를 그대로 보도했다.

신씨는 “숨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는 비난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가족보다 경비원들에게 더 충실했다. 가족은 가족 모두에게 스파이였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경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신씨는 말한다.

“외부인들은 수용소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를 때리는 것은 군인들만이 아니었다. 수감자들 스스로 서로에게 못되게 군다. 공동체라는 의식 같은 것은 아예 없다. 나는 그런 야비한 수감자 중 하나였다.”

신씨는 용서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치범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릴 수 있다면, 그것만이 자신의 거짓말과 인생을 용서받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고 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30/2012033001831.html )

어머니가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지 9년 만에, 신인근씨는 14호 수용소를 둘러싼 전기철책을 넘어 북한의 황야로 탈출했다. 2005년 1월 2일이었다.
 
이곳에서 탈출한 사람은 신씨가 처음이자 마지막. 14호 수용소는 종신형 대상자와 단기 수형자를 함께 수감하는 15호 수용소(요덕 수용소) 등과 달리 사형수나 종신형 대상자만 수감하는 곳이어서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곳’으로 통한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그는, 수용소 밖 북한 땅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1개월여 만에 그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2년 뒤 한국에서, 4년 뒤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살게 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동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블레인 하든이 신씨의 이야기를 담은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탈출'(Escape From Camp 14)을 출간한다. 하든은 책을 통해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생생히 묘사했다. 조선닷컴은 하든이 책 출간에 앞서 ‘어틀랜틱 몬슬리(the Atlantic Monthly)’에 28일 기고한 ‘수용소에서 태어나다: 왜 북한 소년은 그의 엄마를 죽게 만들었나’를 소개한다.
 
◆남녀 모범수들의 ‘합방’으로 태어난 아기, 재봉틀 떨어뜨린 죄로 손가락 잘려

신씨는 영양실조로 체격이 왜소했다. 키는 168cm, 몸무게는 54kg. 팔은 어린 시절 노동으로 휘어 있었고, 굽은 등과 엉덩이에는 불 고문 흔적이, 발목에는 독방에 거꾸로 매달렸을 때 생긴 족쇄의 흉터가 각각 남아 있다.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은 재봉틀을 바닥에 떨어뜨린 벌로 경비원이 잘라버렸다. 양쪽 종아리는 전기철책을 넘을 때 생긴 화상 자욱과 흉터로 얼룩져 있다.

신인근씨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수용소 안에서, 남녀 모범수를 골라 1년에 다섯 차례 합방시켜 애를 낳게 하는 '계획관리'에 의해 태어났다.

수용소에서 어린이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신씨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가족을 밀고함으로써 살아남는 법부터 배워나갔다.

‘사랑’과 ‘자비’, ‘가족’같은 단어는 그곳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14호 수용소에서, 신씨는 ‘국어’라는 단 한권의 책만을 봤다. 그 책은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찬 교사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신씨는 그 교사가 막대기로 아이를 때려죽이는 것을 봤다.

외부에서 살다 들어온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수용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씨에게,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에게 수용소는 ‘집’이자, ‘세상’이었다.


◆‘엄마’는 음식 놓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였을 뿐…"엄마는 사랑해야하는 존재란 것, 문명사회 와서 처음 배웠다"

신인근씨의 눈에 ‘엄마’는 ‘음식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신씨를 무시했다. 형이 하나 있었지만, 그 역시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씨가 어렸을 때, 신씨의 엄마는 매일 아침 그를 홀로 두고 들판에 일하러 나갔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신씨는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서자마자 점심밥을 먹어치웠고, 때로는 엄마의 점심도 다 먹어버리곤 했다.

엄마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돌아왔다가 먹을 게 안 남아 있으면 분노에 가득 차 신씨를 때렸다. 괭이로, 삽으로,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들고 신씨를 때렸다. 신씨는 자라서 경비대에게 맞은 것보다 더 심한 폭력을 엄마로부터 종종 겪었다고 털어놨다.

수년이 지나, 신씨의 엄마가 죽고, 신씨는 미국에서 살게 됐을 때, 신씨는 기자에게 자신이 엄마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상 속에서일 뿐이었다. 문명사회에 들어와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난 뒤에 한 말일 뿐이었다.

신씨의 엄마는 신씨에게 자신의 과거나 가족, 왜 수용소에 오게 됐는지 등에 대해 전혀 말해주지 않았고, 신씨 역시 물어보지 않았다. 신씨가 그의 아들이 된 것도 전적으로 수용소의 결정이었다.

☞<껴안는 보위지도원, 엄마는 저항하지 않았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30/2012033001475.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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